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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바둑’ 성공 데뷔 … “지역 바둑 영재들 겨룰 무대 생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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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제44회 전국소년체전에 처음 정식 종목으로 참가한 바둑이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마쳤다. 내년부터는 전국소년체전뿐 아니라 전국체육대회에서도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참가한다. [사진 한국기원]

두뇌 싸움을 하는 바둑이 스포츠인가를 두고 오랜 논쟁이 있었다. 지난달 30~31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44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이 해묵은 논란에 종지부가 찍혔다. 바둑은 전국소년체전에 처음 정식 종목으로 참가해 스포츠 종목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전국 16개 시·도에서 192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번 대회에는 선수와 대회 관계자 외에도 수백 명의 학부모가 경기장을 찾아 뜨거운 열기를 보여줬다. 경기 결과 남자초등부에서는 서울·경기·충남·광주가, 여자초등부에서는 서울·광주·경기·강원이 각각 금·은·동메달을 차지했다. 남자중등부는 전북·경북·경기·경남이, 여자중등부는 서울·대전·전북·광주가 각각 금·은·동메달을 가져갔다.

 # 바둑, ‘스포츠’로 데뷔하다

각 시·도 선발전을 통과한 선수들이 바둑을 두고 있다. 아래는 지난달 30일 열린 개막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는 박치문 경기위원장(오른쪽)과 선수단 대표.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 바둑이 스포츠 무대에 첫선을 보였다는 점이다. 박치문 경기위원장(한국기원 부총재)은 개회사에서 “소년체전에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됨으로써 대한민국이 바둑 강국으로 자리 잡고 아시아계를 넘어 세계로 나가는 기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많은 관심을 받은 만큼 이번 대회는 큰 탈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는 평이다. 이다혜(4단) 심판위원은 “처음 열린 큰 대회임에도 잡음 없이 무사하게 대회가 끝났다”며 “다른 큰 대회에서는 이의 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에는 심판의 판정에 불복하는 사례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지역 바둑 활성화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도 큰 성과로 꼽힌다. 그간 지역 바둑은 입단을 꿈꾸는 바둑 영재들이 모두 서울로 유학 가는 바람에 공동화가 극심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지역 팀이 활성화돼 연고지를 기반으로 한 바둑 커뮤니티가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성룡(9단) 심판위원은 “지방 어린이들이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바둑 공부를 할 수 있는 무대가 생겼다는 것이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많아

 첫발을 내디딘 만큼 개선할 점도 많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바둑 경기의 세부적인 규칙을 정리하는 것. 그간 바둑에는 애매한 규칙이 많아 대회마다 규정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한번 놓은 돌을 다른 곳에 다시 놓는 경우다. 이번 전국소년체전에서는 한번 놓은 바둑알의 자리를 바꾸면 반칙패로 처리했다. 하지만 2013년 인천실내무도아시안게임에서는 바둑알을 놓았다가 들어올리는 순간 반칙으로 간주됐다. 이와 같이 통일되지 않은 규칙을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급하게 정리했지만 아직 미비한 점이 많다. 이현욱(8단) 심판위원은 “바둑이 제대로 된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는 규칙을 정립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아직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10월 전국체전이 열리기 전에 규칙부터 세부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국에 적합하지 않은 경기장 환경도 문제다. 이번 대회가 열린 곳은 중간에 대국장이 있고 주변에 외부인의 참관이 가능한 구조였다. 그렇다 보니 소음을 통제하기 어려워 대국 내내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외부인의 훈수 가능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김성룡 9단은 “바둑판을 주변에서 볼 수 있어 선수가 화장실에 간 사이 훈수할 가능성도 있었다”며 “대국장 배치를 바꿔 외부에서 바둑 두는 모습을 볼 수는 있지만 그 내용은 볼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둑 경기를 다양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지은(9단) 심판위원은 “현재는 바둑 경기에 단체전만 있는데 앞으로 개인전, 남녀 혼성 경기 등을 추가했으면 좋겠다”며 “메달 수를 늘려 더 많은 어린이가 다양한 바둑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주=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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