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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해서 더 매력적이야, ‘스파이’ 멜리사 맥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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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뚱뚱해서 더 매력적이야, ‘스파이’ 멜리사 맥카시

냉철한 지성, 운동으로 다져진 몸, 민첩한 움직임. 스파이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은 잠시 잊는 게 좋을 듯싶다. 액션·코미디영화 ‘스파이’(원제 Spy, 5월 21일 개봉, 폴 페이그 감독)는 내근직 CIA 요원 수잔 쿠퍼가 현장에 파견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을 그린다. 주인공 쿠퍼 역은 멜리사 맥카시(45)가 맡았다. 맥카시는 할리우드에서 몇 안되는 플러스 사이즈 배우다. 그는 날씬한 몸매가 아니어도 첩보 요원 역을 그럴싸하게 완성할 수 있다는 걸 ‘스파이’에서 몸소 보여준다.

쿠퍼(멜리사 맥카시)는 미국정보기관 CIA에 정식 요원으로 입사했지만, 뚱뚱하다는 이유로 한 번도 현장에 파견된 적이 없다. 그저 동료 요원 파인(주드 로)이 현장을 누빌 때 그에게 필요한 정보를 내부에서 전달할 뿐이다. 그런 쿠퍼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현장에 출동한 파인이 적의 손에 암살된 것이다. 그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던 쿠퍼는 파인의 복수를 위해 현장 요원에 자원한다. 이후 쿠퍼가 멋진 스파이 모습으로 등장할 것으로 상상한다면 큰 오산. 적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뚱뚱한 몸매를 한껏 이용한 위장술을 선보인다. 고양이 일곱 마리를 키우는 곱슬머리 관광객, 아이 넷 딸린 중년 부인으로 위장한 쿠퍼는 등장만으로 큰 웃음을 자아낸다.

맥카시 특유의 친근한 매력은 쿠퍼 역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맥카시는 “각본을 처음 읽고 ‘쿠퍼 파이팅!’을 외쳤다”며 역할에 애착을 드러냈다고 한다. 쿠퍼는 한 번 웃음이 터지면 오동통한 볼에 깊은 보조개를 패며 아이처럼 자지러진다. 정이 많은 그는 마약 거래상 레이나(로즈 번)를 살뜰하게 보살피기도 한다. 이때 맥카시의 모습은 영락없는 이웃집 언니다. 이 영화로 맥카시와 세 번째 호흡을 맞춘 폴 페이그 감독은 “상냥하고 평범한 여성이 요원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그리기에 맥카시가 제격이다”고 말했다.

<코믹하면서도 애처로운 연기>

맥카시는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같은 이야기를 스무 번 해도 매번 웃기는’ 농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스무 살, 뉴욕으로 상경해 우연히 코미디 무대에 섰다. 그 뒤 재능을 인정받아 미국 TV 시트콤 ‘제니’(1997~98, NBC)에 출연한다. 2011년엔 주연을 맡은 시트콤 ‘마이크 앤 몰리’(2010~, CBS)로 미국 TV 방송상인 에미상에서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무대와 시트콤에서 탄탄하게 코미디 연기를 다져온 맥카시가 할리우드에 왔을 때, 성공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출연한 코미디영화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2011, 폴 페이그 감독) ‘내 인생을 훔친 사랑스러운 도둑녀’(2013, 세스 고든 감독) ‘히트’(2013, 폴 페이그 감독) 등 세 편이 연달아 흥행했다. 세 작품은 전 세계에서 총 7억 달러(약 7700억원) 수입을 거둬들였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그를 가리켜 ‘여자 짐 캐리’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만큼 강력한 흥행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는 찬사다.

맥카시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개인기를 요란하게 펼치며 관객을 웃기다가도, 삶의 고통을 표현하는 대목에선 큰 호소력을 발휘한다. 캐릭터가 단선적으로 그려지기 십상인 코미디에서조차 그 점은 빛을 발한다.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에서 그가 연기한 메건은 출렁이는 살을 드러내며 “난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말하는 엉뚱 발랄한 캐릭터다. 하지만 학창 시절 몸매 때문에 괴롭힘당한 일화를 말할 땐, 맥카시가 실제 자기 고백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짠하다. 빌 머레이 주연의 ‘세인트 빈센트’(3월 5일 개봉, 데오도르 멜피 감독)에선 싱글맘 매기 역을 맡아, 직장과 가정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애환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스파이’에서 쿠퍼는 짝사랑하는 파인이 자신을 친구로만 여겨 그 앞에서 억지 웃음을 짓는데, 그 애잔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밝은 곳의 그림자가 더 짙듯, 맥카시가 그리는 아픔과 어둠은 그가 겉으로 드러내는 웃음과 부딪히며 더욱 진실하게 다가온다. 맥카시는 “모든 것엔 이유가 필요하다. 내가 맡는 역은 다소 엉뚱하고 코믹하지만, 난 이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해석해 표현하려 한다”고 자신의 연기를 설명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맥카시에 대해 “믿기 힘들 만큼 섬세하다”며 “역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아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극찬했다.

맥카시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여배우다. 내년에만 그가 출연한 영화가 다섯 편이나 개봉한다. ‘미셸 다넬’(벤 팰콘 감독) ‘고스트버스터즈’(폴 페이그 감독)를 비롯해 타이틀이 정해지지 않은 영화 두 편과 애니메이션에 목소리 출연한다. 물론 모두 코미디영화다. 하지만 두고 보시라. 맥카시는 당신을 웃기는 데서 끝내진 않을 것이다.

-멜리사 맥카시의 절친들-

맥카시는 숱한 전작에서 여성의 진한 우정을 그렸다. 극 중 그와 친구였던 배우들은 지금도 맥카시와 돈독한 우정을 자랑한다고 한다.

-‘스파이’ 쿠퍼와 낸시(미란다 하트)

쿠퍼와 낸시는 둘 다 내근 CIA 요원인 데다, 못생겼다는 공통점 때문에 급격히 친해진다. 둘은 예쁜 여자를 놓고 함께 험담하기도 하고, 바보 같은 농담을 즐겨 하면서 찰떡궁합 완벽한 콤비로 거듭난다. 쿠퍼가 현장에 출두한 뒤 낸시가 그의 오른팔이 된다.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메건과 애니(크리스틴 위그)

뚱뚱한 체격에 남자를 밝히고, 툭하면 기괴한 말을 쏟아내는 메건. 자신의 불행을 만날 남 탓으로 돌리는 애니에게 메건이 먼저 다가가고, 둘은 곧 친구가 된다. 자신의 과거 상처를 솔직하게 나누는 메건에게 애니도 마음의 문을 연다.

-‘히트’ 섀넌(멜리사 맥카시)과 사라(샌드라 불럭)

쌍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경관 섀넌. 그는 하는 짓마다 얄미운 FBI 요원 사라와 같은 사건에 투입되면서 번번이 부딪힌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한 뒤 가까워진다. 사라의 고양이가 집을 나가자, 섀넌이 길거리를 샅샅이 뒤져 찾아줄 정도.

글=윤지원 기자 yoon.jiwon@joongang.co.kr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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