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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수익금 뺏으려 고급 호텔서 강도극 벌인 일당 구속

중앙일보

입력

서울의 한 고급 호텔에서 보이스피싱 범죄 수익금을 둘러싼 강도극이 벌어졌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호텔 객실에서 손도끼와 흉기로 상해를 입히고 보이스피싱으로 조성된 현금 9억 4000만원을 빼앗아 해외로 달아나려한 중국동포 이모(28)씨와 대만인 장모(21)씨 등 5명을 강도살인미수 혐의로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이 사건 피해자이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원인 중국동포 A(40)씨 등 2명은 사기 및 장물운반 혐의로 구속했다. A씨 등은 이씨가 휘두른 흉기에 머리와 가슴 부위를 다쳐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 상선으로부터 현금 9억 4000만원을 중국 위안화로 환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중간에서 돈을 빼앗을 계획을 세웠다. 환전을 부탁 받은 돈이 보이스피싱으로 조성된 돈이라 빼앗아도 신고하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씨는 범행을 위해 카지노에서 만난 대만인 장씨를 끌어들였다. 장씨는 범행을 도와주면 1억원을 받기로 하고 대만인 친구 4명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범행에 사용할 흉기와 장난감 권총 등을 구입한 이씨 일당은 지난달 24일 오후 6시쯤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의 모 호텔로 향했다. 먼저 호텔 객실로 들어간 이씨는 전화로 흉기를 든 대만인 4명을 불러들였다. 단순히 돈만 건네주면 될 줄 알고 무방비 상태로 이씨를 만나러 온 A씨 등은 결국 상해를 입고 돈도 빼앗겼다.

그러나 돈을 빼앗아 해외로 도주하려던 이씨의 계획은 중간에 틀어졌다. A씨와 함께 호텔로 왔다가 객실 밖에서 대기하던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 B씨가 예상과 달리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즉각 범행 장소로 출동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하고 이씨 일당을 뒤쫓았다. 이미 호텔을 떠난 이씨는 경기도 안산의 친척집에 들러 돈을 숨기고 곧장 인천공항으로 가 비행기 탑승까지 성공했지만, 결국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경찰에 체포됐다. 함께 범행을 벌인 대만인 5명도 대만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에서 대기하다 모두 경찰에 붙잡혔다.

피의자들의 신병을 확보한 경찰은 이씨 아버지를 통해 이씨가 숨겨놓은 돈을 압수했고 추가 조사에 들어갔다. 단서는 현금을 묶은 띠지였다. 경찰은 일부 현금뭉치가 시중은행 띠지로 묶여있는 것을 확인하고 해당 은행 자료를 확인해 이 돈이 보이스피싱으로 조성된 돈임을 밝혀냈다. 경찰 관계자는 “각각 2200만원과 4000만원을 사기당한 2명의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확인했고, 나머지 돈도 모두 보이스피싱으로 조성된 돈일 것으로 보여 추가로 피해자를 찾고 돈을 돌려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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