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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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며칠전 남편이 지방 출장으로 1주일간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처음한 3일은 4살난 아들과 갓난아기 때문에 시달릴뿐 반찬 걱정않고 정신적으로 아주 평안해 좋았다. 한데 날짜가 지나갈수록 그게 아니었다.
하필이면 이때 변기가 고장이 나고 단수까지 된것은 좋았는데 물이 다시 공급이 되자 물탱크의 물이 나오지 않아 지하실로, 목욕탕으로 공기를 빼러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는 등 생각지도 않은 일거리들이 속출해 뭘 고치는 것에는 도통 문외한인 나를 여간 귀찮게 하는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잡다한 일거리들도 모르는 것은 앞집 주인한테 물어가며 고치곤 하니까 별것은 아니었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옆에 같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큰 아이는 진종일 뛰어놀아 고단하니까 일찍부터 곯아 떨어지고 갓난 아기는 젖만 먹으면 자고, 해서 초저녁부터는 누구한테도 의지할데 없는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평소에도 남편과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럴 경우 대화의 양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루생활에서 일어났던 사소한 얘기들을 얼굴 마주보며 오순도순 주고받을 상대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도 적적하고 허전한 것인줄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것이다.
남편이 1주일간 집을 비우는데도 그런데 하물며 2, 3년씩, 그것도 자기 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에 가있는 아빠를 가진 가정이야 그 외로움과 허전함은 오죽하랴!
지난해 여름 고모부가 사우디로 떠나고 난 고모집을 문득 생각했다.
남편의 지방출장 이후로 난 고모댁에 전보다 좀더 많은 관심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이은하<서울강남구방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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