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철 <고려대교수·경제학>|"경기는 일시적 대책보다 큰 흐름을 봐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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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과열경기를 걱정하던 때가 엊그제 갈은데 벌써 하강경기의 징후가 보인다는 걱정의 소리가 들린다. 한참 달아오르다가도 불기가 끊어지면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양은남비와 같은 경제를 연상케하는 변화가 아닐수 없다.
수출부진이 경기의 냉각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수출증가율이 눈에 보이게 떨어졌는데 무역환경은 더욱 험해지기만 하고 있다. 자연히 수출전망이 밝지 못하여 기업은 새로운 투자사업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업계가 울상이다.
그래서 환율도 올리고 자금도 풀자는 회복정책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있다.
그러나 아직 경기회복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우선 연초의 과열경기진단이 -그이유야 무엇이든- 잘못된 예측이었다면 한두달의 동향에 근거한 하강경기도 유동적인 전망에 불과하다. 환율조정의효과는 알수도 없는 형편이며 수출둔화로 저조해진 기업의 투자의욕을 자금지원으로 북돋우기는 어려울것이다.
경기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하나 수입은 계속 증가하여 무역적자는 연초의 예상을 크게 웃도는 규모로 늘고있다. 이런 여건하에서 회복정책은 소비나 자극하여 국제수지관리를 더 어렵게할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수출이 감소하면 내수를 늘려 경기를 조절할 수 있는 구조적인 신축성이나 정책적인 여유를 구비하지 못하고있다.
그 이유는 확대할수 있는 내수라야 소비나 부동산투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때 우리경제의 경기순환은 국내시장의 변동보다는 외국수출시장의 변동에 따라 그방향과 폭이 결정되는 양상을 보이고있다.
즉 세계경제, 좀더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주요수출시장인 미국과 일본경제의 변화가 국내경기를 좌우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제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적시에 운영한다해도 외국수출시장의 수급을 조절할 수 없는 이상 경기변동의 폭을 축소하려는 정책적인 노력은 너무나 명백한 한계점에 부닥치게 된다. 외국경기의 파도에 이리 저리 밀릴수 밖에 없는 처지가 우리의 고민이오, 또한 수출의 신장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모든 경제가 지불해야하는 댓가라고 하겠다.
근년에 들어서면서 우리경제는 더욱 더 경기변동에 대처하기 어렵게 그 구조가 변해가고 있다. 우선 경기를 크게 타는 중화학제품의 수출비중이 커지고 있다. 수출상품과 시장다변화의 필요성이 그토록 강조되어 왔지만 아직도 미국과 일본이, 그리고 의류·선박·철강·신발등 10개품목이 총수출의 거의 50%와 80%를 각각 차지하고있다.
컬러TV나 철강등 우리수출에 대한 미국의 규제가 국내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가위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우리 힘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렵다해도 정책당국과 기업은 경기변동을 정확히 예측하고 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있을 수없다. 문제는 경기보다도 더 쉽게 과열·과냉하는 정책당국이나 경제전문가들의 민감성에 있다. 매달, 아니 이제는 매주마다 경제지표의 변동에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즉각적으로 정책적인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쪽으로 사고가 기울고 있다.
국제우등생의 위치를 지키려면 순간의 방심도 금물이겠으나 수시로 예고없이 오르고 내리는 지표들에 신경을 쓰다보면 우선 장기적인 정책목표는 잊어 버리고 이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영하게될 우려가 있다.
지엽적이며 일시적인 단기안정문제에 집착하다 보면 경기의 큰 흐름을 보지 못하여 정작 대처해야할 과제는 지나쳐 버리는 우를 범하게된다.
수출이 주도하는 경기가 우리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밀물과 썰물처럼 오르고 내리는 변화라면 간만에 맞서기보다는 적응하려는 노력이 경기대책을 앞서야 하겠다.
경기변동을 완전히 막을수는 없다 하더라도 변동에따른 고통을 완화하는 방법은 있다. 우선 시장의 가격기구가 제기능을 발휘하면 경제는 더 쉽게 외부로 부터의 충격에 적응할수있다.
둘째, 정부는 경기변동에 따른 일시적인 실업이나 국제수지의 변동에 대처하기 위한 기금을 운영하고, 기업은기업대로 경기하강시에 당면하게되는 수지악화의 충격을 흡수할수 있는 여유자금을 마련 한다면 그런대로 어려운 기간의 고통을 덜수있다.
기업이나 정부에 이런 기금을 운영할 재원의 여유가 있을리 만무하다. 더구나 이러한 완충기금의 운영은 막대한 비용을 수반한다. 물론아무도 그 비용을 부담하려들지 않는다. 고통을 감수하든지 아니면 비용을 지불하는 어떤 선택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한 우리는 계속 경기의 명암에 따른 일희일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수출부진으로 경기가 후퇴할 때마다 나오는 주장인데 그것은 이제는 수출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개발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구조개편론이다.
앞으로는 내수의 규모도 계속 증가 하여 언젠가는 수출 못지 않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나 아직은 국내시장만으로 고용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의견을 묵살한다기 보다는 주장의 근거와 현실성을 파헤쳐 단기적인 경기문제가 구조재편으로 비약하는 논리상의 모순은 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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