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In&Out 맛난 만남] '천재 소녀' SK텔레콤 윤송이 상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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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석 졸업, 드라마 '카이스트' 속 '천재 소녀'의 실제 모델. 24세의 나이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학위 취득. 현재 SK텔레콤 최연소 상무이자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지난해 아시아 월 스트리트 저널과 세계경제포럼(WEF)이 각각 '주목할 만한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과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

이런 우문(愚問)이 또 있을까마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윤송이(30) 상무의 프로필을 확인한 뒤라면 감탄과 함께 자연스레 따라 나올 그 질문.

"뭘 먹고 그렇게 머리가 좋은 거죠?"

새우냉채를 접시에 뜨다 말고 그가 소리없이 웃는다. 반달 모양으로 눈가에 피어나는 웃음에는 아직 소녀티가 묻어난다.

"가리는 음식 없이 골고루 잘 먹어요. 어릴 적 어머니께서 작은 어린이용 식판에 영양소 균형을 맞춰 반찬을 담아주셨던 기억이 나요."

'교과서 중심으로 학교 수업에 충실했다'는 대입 수석 합격자의 코멘트 같다며 실망한 기색을 보이자, "특별한 비결보다는 붓글씨를 쓰는 어머니(서예가 이지숙씨) 옆에서 책을 읽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인 덕분일 것"이라고 덧붙인다.

유행하는 큼직한 선글라스에 가벼운 청재킷, 손에는 앙증맞은 핸드백과 책 한 권. 테이블 앞으로 바짝 다가올 때까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천재 공학박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대기업 임원으로 매스컴에 소개된 본인의 사진과도 사뭇 다르다. 밝고 평범한 젊은 여성. 겉보기에는 그러했다. "덕분에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좋다"고 장난스레 말하는 목소리가 가늘고 나긋나긋하다.

가장 좋아한다는 메뉴가 나오자 맛있게 먹는 법이 따로 있다며 설명을 시작한다. 소롱포(小籠包). 만두 안에 육즙이 가득 든 상하이식 별미다. 김이 나는 소롱포를 미초(米醋)에 살짝 찍은 뒤 스푼 위에 올린다. 만두 옆쪽을 조금 베어 물면 뜨거운 국물이 흘러나와 스푼을 가득 채운다. 국물부터 홀짝 들이킨 뒤 만두를 입에 넣자 돼지고기.민물 게.새우.샥스핀 등으로 채운 속이 육즙과 어우러진다. 휴일이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며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다. 4~5명쯤 일행을 만들면 소롱포를 종류별로 시켜놓고 골고루 맛볼 수 있어 좋단다.

'파격 인사'란 말을 들으며 SK텔레콤 상무로 영입된 지도 1년이 넘었다. 입사 이래 줄곧 개발에 매진해온 휴대전화 서비스 '1㎜'도 슬슬 가시적인 성과를 낼 무렵이다. 일 이야기가 나오자 말이 빨라진다. 탕포(湯包)에 꽂았던 대나무 빨대를 내려놓는다. 상하이 민물 게로 만든 큰 만두에 빨대를 꽂아 육즙을 빨아먹는 것이 재미있어 주문한 메뉴다. "개인별 특성에 따라 원하는 정보와 서비스를 맞춤 제공하는 비서 서비스지요. 상용화되면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질 겁니다."

3개 팀, 50여 명의 직속 직원들을 이끌고 있다. 자신보다 나이도 경험도 많은 이들을 동료.부하 직원으로 두고 일한다는 것. 껄끄러울 때도 많지 않을까.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으며 나이나 성별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은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그에게 "어려운 것, 못 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한참을 망설인다. 고민 끝에 나온 말은 '사람 얼굴과 이름 기억하기'. 처음 만난 줄 알고 인사를 했는데 이미 안면이 있었던 경우가 꽤 있단다. 타인에게 추월을 당한 기억은 중학 시절 전교 1등을 놓쳤던 것 한두 번정도다.

그에게도 '평범한'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을 건넸다. 성공한 여성 공학도, 기업인의 대표주자로 꼽히기에 더욱 작은 시련이 주는 평범한 쓰라림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고. 역시나 우문이었다. "'…했다면' 이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주어진 실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차분한 대답이 돌아왔다. 옳은 말이다.

가끔 요리를 하면 정신없이 빠져든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최근 선보인 메뉴는 아귀찜과 닭볶음탕. 각각의 재료들을 한데 섞어 끓이고 데쳐 그럴싸한 요리로 완성하는 과정이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통신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지금의 일과 닮았다.

요리와 공부, 회사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재미있다'는 말을 거듭했다. 무엇이건 진심으로 즐기고 탐구하는 능력, 의무와 책임을 흥미로운 실험처럼 즐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 그를 따라 앙증맞은 꽃 모양 딤섬을 하나 집어들었다. 얇은 밀가루 피 안에 숨어있던 찹쌀이 입안 가득 쫄깃하게 씹혔다.

신은진 기자

*** 윤송이 상무가 소개한 난시앙은 …

1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상하이 소롱포 전문점 난시앙의 서울 1호점. 중국에서 초빙한 요리사들이 본토의 맛을 선보인다. 소롱포는 속 재료에 따라 7000~1만5000원선. 대나무 빨대로 먹는 탕포(左)와 두부.게알로 속을 채운 게알춘권도 인기다. 무릉도원을 주제로 디자인했다는 실내 인테리어도 눈여겨보자. 청담사거리에서 갤러리아백화점 방향. 02-3446-0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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