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먹거나 쓰기 전 먼저 떼어주는 게 기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로 시작하는 ‘장미’라는 노래를 맛깔스럽게 부르는 한 남자가 있다. 도산대로 옛 늘봄공원 뒷골목에 있는 한 일식집의 주인이자 주방장. 평소에 여기저기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말간 분홍빛 피부의 그는 장미보다는 분꽃을 닮았다. 소녀가장에겐 등록금을, 독거노인에게는 몸이 든든해지라고 들깨 넣은 미역국을, 자원봉사자에겐 힘내라고 생선초밥을.

 그런 그가 우리 밴드 음악연습실에 먹을 것을 보내왔다. 초밥에다 미역국, 그리고 튀김까지. 컵라면을 먹어 배부른 상태였던 우리들은 그 귀한 음식들을 깔끔하게 먹지 못했다. 초밥의 밥 덩어리를 반쯤 잘라 버리고, 튀김도 베어 먹다 남기고, 미역국은 건더기만 건져먹고. 그런데 식당 문을 닫고 퇴근하는 길에 그가 연습실에 들렀다. 끼니를 놓쳤는가. 우리가 베어 먹다 남긴 튀김이며 초밥 덩어리 등을 정신없이 집어먹고 있는데.

 하루 지나면 못 먹을까 봐, 아니면 너무 많이 만들어 남아서 가져다 줬겠지 했는데, 웬걸. 남은 게 아니라 자기도 안 먹고 일부러 우리 주려고 만든 음식이었던 게다.

 그때 알았다. 먹기 전에, 쓰기 전에 먼저 떼어주고 나눠주는 것이 진정한 기부란 것을.

 언제 기사였던가. ‘션과 정혜영’이 셋째 아이 출산 후 비록 집이 없어 전셋집에 살지만 아직까지 집 없이도 행복하니 기부부터 하겠다며 선뜻 1억원을 내놓았다는데. 강남에 빌딩 갖고 있는 연예인이 많은 요즘. 어디 ‘션 부부’라고 그들이 부럽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에겐 집이나 빌딩보다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훨씬 더 중요했던 거다.

 기부란 물질이 넉넉한지 아닌지 상관없이 정신이 넉넉해야만 할 수 있다.

 청문회에서 떠밀려 하는 기부, 죄를 덮기 위한 기부, 나쁜 이미지를 바꿀 요량으로 하는 기부 등등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오염된 이런 기부 이외의 모든 기부에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갖고 싶고 먹고 싶고 사고 싶어도 갖기 전에, 먹기 전에, 사기 전에’ 뚝 떼어 하는 값진 행위. 남모르게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왕이면 널리 알려서 그 바이러스가 여기저기 두루두루 퍼졌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그가 6월 말께 고향 장성의 한 운동장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선물도 받는 효도잔치’를 연다는데. 이참에 우리 ‘락낙밴드’도 재능기부로 연주나 해줄까나. 기부가 뭐 별건가. 돈이든 재능이든 물건이든 남들보다 조금 더 있는 것 함께 나누면 기부인 게지.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