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국제축구연맹(FIFA)의 스위스 은행 계좌에서 인출된 1000만 달러(약 111억원)가 미국 수사당국이 총력전을 벌이는 FIFA 부패 수사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2008년 1~3월 세 차례에 걸쳐 모두 1000만 달러가 FIFA 은행 계정에서 나와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있는 카리브축구협회와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명의의 계좌로 송금됐다. 두 단체는 당시 CONCACAF 회장이자 FIFA 부회장이었던 잭 워너의 통제 하에 있었다. 워너는 최근 미 수사당국에 기소됐다.
이 정도 규모의 송금엔 통상 FIFA 사무총장과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현직 FIFA 관계자들의 진술이다. 당시 사무총장은 제롬 발케, CFO는 마르쿠스 캐트너였다. 두 사람은 FIFA의 조직과 돈을 관장한다. 모두 제프 블라터(79)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블라터 회장의 연루 여부가 제기되는 근거다.
문제는 돈의 사용처다. 이 돈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2010년 월드컵 유치를 위한 매표 자금으로 쓰였다고 미 수사당국은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FIFA 계정에서 돈이 나갔을까.
당시 남아공은 국내 사정상 1000만 달러를 워너에게 지불할 형편이 안 됐다. 그래서 FIFA가 남아공에 지원하기로 했던 1000만 달러를 대신 워너에게로 보낸 것이다. 일종의 ‘돌려막기’였던 셈이다. 사실이면 FIFA가 축구 발전에 썼어야 할 돈을 매표 자금으로 대줬다는 얘기가 된다. 블라터 회장의 5선 연임 성공 후 첫 기자회견에선 이 1000만 달러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블라터는 “내겐 1000만 달러가 없다”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의 결백 주장에도 수사는 속도를 내고 있다. 미 국세청(IRS) 리처드 웨버 범죄수사국장은 블룸버그통신에 “추가 체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웨버 국장의 말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IRS 범죄수사국이 미국의 금융망에서 이뤄지는 돈세탁 등 금융 범죄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존 매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장은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나 “힘밖에 모르는 FIFA에 대해 미군의 복수와 분노를 맛보게 해야 한다. (미군을 동원해서라도)반드시 FIFA를 해체 파괴해야 한다. 나는 지옥문까지 블라터를 따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