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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칼럼] "수십% 수익 드릴께요" 사기 가능성 높아

중앙일보

입력

서명수 객원기자

얼마전 울산시에서 지역 베이비부머 은퇴 예정자 176명을 대상으로 노후준비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준비 부족 55.1%, 대략적인 계획수립 37.5%, 구체적인 계획수립 7.4%로 나타나 전반적으로 노후생활 대비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울산이란 한 지역에 국한된 조사지만 그 대상을 전국적으로 넓혀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은퇴는 두려움·불안함·외로움 등으로 다가온다. 은퇴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자유·행복·만족이라는 선진국 국민들과 한참 다르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가 생기는 원인은 두말할 필요없이 노후준비가 제대로 안된 탓이다. 그래서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거나 막 퇴직한 경우 대개 조급증이 밀려든다. 인생 2모작을 위해 뭐라도 하겠다고 서두르는 맘이 생긴다.

퇴직 후 고정 수입이 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영업이나 투자로 방향을 잡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으면서도 고수익을 추구하며 ‘한방’을 노린다. 그러나 조급함에 밀려 시작한 일이 잘 될 리 없다. 돈이란 불안정한 삶 속에선 싹을 틔우지 않는다. 오히려 자칫하다간 퇴직금은 물론 안 쓰고 한 푼 두 푼 모은 쌈짓돈까지 날려버릴 수 있다.

금융회사에서 퇴직한 이모(58· 서울 개포동)씨는 지난 해 초 가까운 친척으로부터 한 가지 제의를 받았다. 자신이 짓고 있는 경기도 안산의 쇼핑몰에 투자하라는 것이었다. 쇼핑몰이 완공되면 한 개 동을 지분으로 준다는 조건이 파격적이었다. 이거면 충분히 노후 보장이 된다는 미끼도 흘렸다. 이씨는 결국 퇴직금과 함께 거주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모두 11억원을 투자했다.

부인과 친구 등 주위에선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쇼핑몰은 분양이 제대로 안됐다. 돈줄에 쫓긴 친척은 사채를 얻어 써야 했고, 빚 독촉에 시달린 끝에 쇼핑몰 전체 지분을 사채업자에게 넘겨줘야 했다. 이씨가 임대료 수입을 꿈꾸던 쇼핑 몰 한 개 동도 사채업자의 소유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는 친척을 원망하면서 소송까지 벌였지만 허사였다.

50대 사기 피해액 가장 커

사기꾼들도 퇴직자의 불안한 맘을 파고 들며 재산을 노린다. 한 순간에 알토란 같은 재산을 날린 피해자는 원통함으로 속병까지 얻어 눈물과 한숨에 찬 나날을 보내게 된다. 특히 나이 든 퇴직자가 금융사기를 당하면 만회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올 2월 발표한 '2014년 우리나라 금융사기 피해 현황과 특징'에 따르면 만 25세 이상 64세 이하 일반인 2530명 중 29.1%가 금융사기와 관련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대별 피해액을 보면 50대의 피해액 규모가 가장 컸다. 55~59세는 1억4881만원, 50~54세가 1억1659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1인당 평균 피해액 4497만원의 두배가 넘는다.

월급쟁이는 대개 50대에 퇴직을 하게 되는데, 이때 타는 퇴직금이 사기꾼의 타깃이 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사기 유형은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 가장 많았다. 금융사기 피해를 당할 뻔한 응답자 가운데 84.8%(542명), 실제 피해자의 37%도 보이스피싱을 경험했다. 친구, 친척, 직장동료, 학교 동창 등 아는 사람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비율도 10%나 됐다.

그렇다면 어떤 직업군이 사기를 많이 당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공기관 퇴직자가 사기를 당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공공기관에서 ‘갑’의 위치에 있다가 퇴직하게 되면 세상 물정에 어둡기 때문에 사기꾼의 꼬임에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퇴직자 사기의 1순위 대상자는 군인이고, 2위는 교사, 3위는 경찰 출신, 4위는 시·군 공무원이라는 설문조사도 있다. 공공기관 퇴직자 중 생소한 분야에서 새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야생 초원에 가게 된 동물원의 호랑이의 경우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퇴직자의 주변엔 늘 하이에나들이 서성거린다. 비단 사기꾼들만 아니다. 은퇴 조급증이 만들어 낸 내부의 하이에나도 있다. 나이 들수록 의심하는 마음이 약해지면서 팔랑귀가 된다. 외로움도 많이 탄다. 누군가가 살갑게 접근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여기에 고집, 좋게 이야기 해서 자기확신까지 강해져 어지간해선 주의의 충고나 만류가 먹혀 들지 않는다. 이런 심리적 하이에나를 품은 퇴직자는 남의 말에 속아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일단 하이에나에 걸려들어 재산을 털리고 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건 순식간이다.

퇴직자 주변을 맴도는 하이에나들

그럼, 그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십 % 이상 수익을 올려주겠다는 감언이설은 일단 의심부터 해봐야 한다. 지나치게 높은 수익률의 투자권유를 받는 경우 “그렇게 좋으면 당신이나 하라”며 단호하게 관심이 없음을 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결정 단계에서는 금융당국이나 금융회사의 관련 자료나 정보를 통해 투자의 합법성을 확인하고 모든 계약 내용은 반드시 문서화해 놓는 게 필요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들쑤셔대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 이런 식의 충동질을 해대며 정신을 쏙 빼놓으려 한다면 그건 '마감효과'를 노린 하이에나로 보면 된다, 만약 하이에나의 유혹에 판단이 흐려진다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친구나 식구들과 의논하도록 하자. 퇴직자에겐 하이에나의 집요한 공세를 여하히 물리치느냐가 안정된 노후생활로 넘어가는 첫 관문이다.

서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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