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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협정」설 혼선…어떻게 풀이해야 하나|불-북한관계 개선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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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의 「불·북한문화교류협정체결」주장 (19일 평양방송보도)은 프랑스측의 즉각적인 부인 (20일 외무성「해명」)으로 사실과 다른것으로 드러났으나 81년5월 「미테랑」사회당정부등장후 불·북한관계개선문제를 놓고 벌여왔던 한국-프랑스, 프랑스-북한간의 줄다리기를 생각하면 시사하는 점이 많다.
지난9월 「자크·부테」프랑스외무성 문화·과학·기술총국장이 평양을 방문했을때 북한측관계자와 회의의사록(Procesverbal de lentretien)만을 작성했을뿐 협정 (agrement)체결은 없었다고 한외무성측의 「해명」대로라면 북한측은 「의사록」을 「협정」이라고 일부러 주장해본 셈이된다.
외무성대변인은 또 이 「의사록」에는 북한측의 요청사항만이 기록됐다고 말하고있어 평양측이 협정과 의사록을 혼동했다고 보기는 더욱 힘든다.
금세 진부가 밝혀질 사실을 거침없이 공표했다면 한국대사관 관계자의 말대로 「확대선전」용이었거나 진전없는 대불관계개선문제에 밀어붙이기작전으로 나온것이라고 볼수있다.
사회당정부등장후 프랑스와의 관계개선에 큰 기대를 가졌던 북한은 81년10월 노동당국제부장 김영남을 발랑스에서 열렸던 프랑스사회당전당대회에 보내 불정부 고위인사와의 접촉을 시도하는등 다각적인 노력을 했으나 3년이 지난 현재까지 별 성과를 보지 못했다.
72년 프랑스좌파공동강령에서 북한승인문제를 언급했었고 『모든 나라와 외교관계를 갖는다는것이 프랑스의 기본입장』임을 천명한 (81년10월「피에르·모르와」수상) 사회당정부가 대북한관계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것은 말할 나위없이 한국과 프랑스의 기존우호관계의 유지라는 명분과 함께 경제협력을 바탕으로한 대한입장때문이다.
한국은 프랑스의 주요수출시장으로 이미 원전9, 10호기의 수주가 이뤄졌고 프랑스는 여전히 20억∼30억달러규모인 원전11, 12호기를 비롯, 3억6천만달러규모의 LNG터미널, 부산지하철 (1억달러) , 광양만제2제철 (23억달러), 88서울올림픽통신위성(8억달러) , 에어버스판매등에 큰 관심을 갖고있다.
국익과 실리가 외교를 리드하는 프랑스의 외교전통에서 볼때 북한승인이란 명분을 위해 「한국」이란 실리를 버리기는 어려웠던 것같다.
이같은 프랑스의 입장은 그동안 수없이 반복·확인됐던「대한관계불변」발언에서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81년10월 「클로드·셰송」외상은 민병기주불대사(당시)와 만난자리에서 양국의 기존우호협력관계는 앞으로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고 같은때 「모르와」수상은 윤자중교통장관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이같은 불변방침을 재확인했다. 「미테랑」의 사회당정권출범후 한국외무장관으론 최초로 프랑스를 방문했던 노신영장관(당시)과의 회담때(82년2월22일)도 「셰송」외상은 남북한교차승인이 아니라면 프랑스가 일방적으로 북한을 승인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으며 같은해 8월 서울에 가서도 북한승인문제에 언급, 아무런 결정도 내려진바 없으며 한국의 안정을더이상 해치는 결정을 한다는것은 프랑스정부로선 생각할수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미테랑」대통령은 윤석헌대사의 신임장을 받은 자리에서 한국과의 대화강화를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변선상」의 한불관계는 지난해5월 「미테랑」대통령의 중공방문을 전후해 흔들리는 듯한 기미가 있었으나 프랑스측의 해명으로 곧 원상회복됐고 1년전 랭군암살폭파사건으로 더욱 굳혀진 상태로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런 싯점에서 튀어나온것이 「불·북한문화교류협정」사건(?)이다. 형식과 결과는 덮어 두더라도 이 「사건」이 적어도 무기한 뚜껑이 덮여져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불·북한관계개선문제에 시선을 주게 만든것은 부인할수없다. 불·북한문제가 그대로 사회당정부의 서류함속에서 잠자고 있지않다는것은 최근의 움직임들로도 알수있다.
「부테」문화관계총국장의 평양방문에 앞서 북한외교부부장 강석주가 지난 4월 파리에와 파리주재 북한통상대표부의 지위승격과 관계개선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프랑스측은 통상대표부를 외교면책특권이 주어지는「총대표부」로 바꿔주는 문제를 검토했었다는 말도 있다.
이문제는 실현되지 않고있으나 프랑스정부는 최근 북한통상대표부에 외교차량번호를 종래의 2개에서 4개로 늘려주었다.
프랑스의 한 민간회사가 50층규모의 호텔을 평양에 건설키로 북한측과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갔고 프랑스측이 북한에 정부장학금을 주기로했다는 이야기도있다.
외교관계의 수립등 당장 한국을 자극할 정치적 문제들은 뒤로 미루고 북한과 문학·경제부문에서의 현실화부터 쌓아 나가보려는 프랑스측의 심중을 읽을수 있게하는 상황들이다.
한국측에서도 언제까지고 프랑스의 실리에만 매달려 있을수도없다. 「문화협정」건을 계기로 보다 적극적이고 전진적정책으로 대처해나가야할듯싶다.
한불관계는 내년초로 예상되는 「로랑·파비우스」불수상의 방한이후 실현될것으로 믿어지는 양국국가원수의 상호교환방문을 고비로 새로운 차원에서 다시정립되리라고 보는이가 많다.【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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