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또 '부동산 불패' 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서울 강남권 재건축 대상 아파트 시장이 예사롭지 않다. 압구정동 구현대 1차 54평형은 13억~14억원을 호가한다. 판교 신도시 분양시장 과열 방지와 서울권의 초고층 재건축 불허 등의 내용을 담은 2.17 부동산대책이 나온 이후 2억원이 올랐다는 게 심상치 않다. 개포주공 1단지 15평형도 올 들어 2억원이 뛰었다.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 중인 잠원동 한신 5차 35평형은 최근 1억7000만원 상승했고 잠실 주공 5단지 35평형은 달포 만에 1억2000만원이 올랐다. 이런 사례를 들라면 한이 없다.

강남권 일대 대부분의 아파트값은 초매머드급 규제로 불렸던 2003년의 10.29 대책 이전 수준 이상으로 뛰었으니 한동안 기세가 등등했던 그 대책도 힘을 잃은 모양이다. 대통령까지 나섰던 '강남 불패신화 깨기 작전'이 실패로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

10.29 대책이 나온 후 한동안 거래가 위축되고 가격이 떨어져 정부가 경기를 너무 죽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진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급등 장세를 걱정해야 하니 부동산 문제는 정말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듯 요즘의 급등 장세는 강남권 일부 아파트에 국한된 일이다. 하지만 파급 영향을 고려하면 그대로 둘 사안이 아니다. 집값 상승바람은 대개 서울 강남에서 시작돼 수도권.지방으로 확산돼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부동산 시장의 불안기조는 비단 강남권 아파트만의 내용이 아니다. 경기도 분당 아파트도 평당 1200만원대로 진입했고 용인 수지권도 평당 1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중대형을 중심으로 5000만~1억원가량 올랐다. 행정복합도시 영향으로 천안.대전 등 충청권 시장도 상승세다.

토지시장은 더 심각하다. 정부가 각종 개발사업을 내놓는 바람에 주요 지역의 땅값이 껑충 뛰고 있다. 지금도 너무 올라 야단인데 개발계획이 가시화하면 더 뛸 것이란 분위기다. J프로젝트 사업지로 거론되는 영암.해남권은 올 들어 많게는 2배 이상 뛰었다. 파주권의 LCD공단 대로변 농지는 평당 100만원에도 못 산다.

왜 그럴까. 시중의 풍성한 투자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집중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부동산에 투자해야 돈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수천억원을 주무르는 사설 펀드가 부동산 시장을 헤집고 다니면서 매물을 싹쓸이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가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의 불패 신화가 깨질 리 만무하다.

분위기가 이럴진대 무슨 정책인들 약발이 먹히겠는가. 세금 많이 매겨도 먹을 게 있다고 덤비고 있으니 정부 당국도 어쩔 수 없을 게다.

오죽했으면 건교부가 무분별한 재건축 허용을 막기 위해 긴급 안전진단 조사권 발동 방안까지 들고 나왔겠는가. 이것도 모자라 서종대 건교부 주택국장은 "건설 경기를 희생해서라도 집값을 잡겠다"며 벼르고 있다.

대책은 없다는 말인가. 초고층 재건축을 허용해 공급을 대량 늘리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지만 이는 규제 완화로 늘어난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장치가 마련된 뒤 가능하다. 개발이익이 생기면 당연히 집값이 뛰게 되고 이는 주변 아파트값까지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무엇보다 가수요를 줄이는 게 급선무다. 계속 증대하는 투자수요를 그대로 두고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부동산에 투자해도 남는 게 없다는 마음이 들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증시를 활성화한다든가, 간접투자 상품 개발을 통해 금융 쪽으로 돈이 흐르게 하는 것도 수요를 줄이는 한 방법이다. 아울러 해외 부동산 투자를 권장하는 것도 새로운 투자 대상 개발의 한 방안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영진 중앙일보조인스랜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