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여성 우대정책이 여성에게 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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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학이 도입한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소수계 우대 정책)’이 대표적이다. 학업 기회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소수 인종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정책인데, 최근엔 이 제도 때문에 한국 학생들이 미 대입에서 오히려 차별을 받았다.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시아인의 명문대 입학률이 10~30%에 달하면서 아시아 학생들에겐 백인보다도 높은 기준을 요구해서다.

아이를 기르면서 일하는 ‘육아 여성’에 대한 우대 정책도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 각 기업체는 육아여성에게 육아 휴직 등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우대 정책 때문에 실질적으로 육아여성이 직장에서 차별 받고 있다. 기업들이 아예 아이 가진 여성에 대한 고용을 꺼리거나 상대적으로 승진 기회를 주지 않아서다.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의 분석에 따르면 그렇다.

실제로 2009년 칠레에서는 2세 이하 자녀를 둔 여성 20명 이상을 고용한 기업은 이들 여성이 업무시간에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의무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선한 의도였는데 결과는 나빴다. 아이를 가진 여성의 초임이 남성보다 9∼20% 정도 떨어지게 됐다. 육아 여성에 대한 채용을 아예 꺼리다 보니 저임금에도 일하겠다는 여성이 많아진 탓이다.

스페인에서는 1999년 7세 이하의 자녀를 기르는 직장 여성들은 회사를 상대로 근무시간 단축을 합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나고 나서 남녀 간 고용 상황을 비교했더니 가임 여성의 고용률은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보다 6% 떨어졌다. 게다가 승진 기회는 여성이 남성보다 37%나 줄었고, 해고 가능성은 남성보다 45% 높아졌다.

미 코넬대학 등의 연구팀이 22개국을 상대로 육아 여성의 고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육아 여성에 대한 장기간의 육아 휴직과 단축 근로 혜택은 단기적으로는 여성의 고용을 늘리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장기로 보면 이들 여성이 갖게 된 일자리의 수준과 질이 나빠졌다. 또 부서장 등으로의 승진 기회도 크게 줄게 됐다.

미국은 1993년 관련 법안을 제정해 남녀 노동자들이 육아와 관련해 12주간의 무급휴가를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 결과 이 법안의 시행 전보다 여성의 고용률은 5% 가량 늘었다. 그러나 반대로 여성의 승진 기회는 종전보다 8% 줄었다.

이에 따라 육아여성 등 육아 가정을 위한 지원이 실효를 거두려면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NYT는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까지 육아와 관련한 수혜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실제로 스웨덴 등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물론 아빠도 육아 휴직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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