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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터넷 덕분에 내 인생 확 바뀌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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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줌마와 인터넷'. 아직은 썩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언론에 거론돼도 불륜 채팅 정도다. 지난달 29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는 여성포털 사이트 아줌마닷컴(www.azoomma.com) 주최로 제4회 아줌마의 날 행사가 열렸다.

행사 제목은 '2003 세상을 클릭한 아줌마'. 컴퓨터의 '컴'자도 몰랐던 주부들이 인터넷이란 새 세상에 도전해왔다. 화면이 다운되고 컴퓨터를 여러 차례 고장내는 좌충우돌 끝에 별천지를 맘껏 누비게 된 아줌마들.

그중 일부가 어엿한 인터넷 창업주가 돼 이 행사에 등장했다. 유료 게임사이트 운영자, 홈페이지 제작자, 그리고 작가가 된 세 명의 아줌마들. 이들의 변신을 취재했다.

◆인터넷으로 외환위기 물리친 아줌마=요즘 유치원.초등학교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올컷의 소설 이름이 아니다.

푸른 눈, 갈색머리의 소녀에게 파티복도 입혀보고 유리 구두도 신겨보는 인형놀이 게임 사이트다. 소녀들의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주는 사이트의 제작자는 자칭 '촌 아줌마' 정춘옥(48.전북 군산시 소룡동)씨.

"인터넷 사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얼굴을 한번 더 쳐다봐요. 컴퓨터 하곤 거리가 좀 있어 보이잖아요?" 외모로 보나 학식으로 보나 내세울 게 없었던 정씨. 그를 어엿한 인터넷 창업자로 만든 것은 외환위기 사태였다.

남편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딸 넷을 공부시키기도 어려웠다. 파출부로 나섰다. 하루 두세집을 전전하다 10개월 만에 팔에 탈이 났다. 그래서 취미를 붙인 게 컴퓨터였다. "처음엔 재미있더라고요. 홈페이지를 만들었더니 방문자가 줄을 서는거라. 자신감이 확 생긴거죠."

몇년 전 동네에서 워드 프로세서를 배운 게 기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인터넷 상의 무료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책을 사다 독학했다.

그러다 발견한 게 아줌마닷컴의 '내 가게 만들기'코너. "나를 위한 거구나" 생각했단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창업 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나 무슨 사업을 해야할지는 막막했다.

그때도 정씨를 도운 것은 인터넷이었다. 웹상에서 만난 한 캐릭터 디자이너가 옷 입히기 사이트를 권한 것. 8명의 캐릭터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2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작은 아씨들'을 열었다.

"첫날 10만명이 사이트에 몰려들더라고요. 눈앞에 돈이 보이고… 이제 성공했구나 싶었어요."

그러나 기쁨은 한 순간. 유료 사이트란 것을 알고는 방문자들이 항의하고 욕까지 해댔다. 유료 이용자는 하루 10여명에 불과했다. 실망 반 절망 반으로 지낸 3개월. 정씨는 맘을 고쳐먹었다. "아이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사이트를 열심히 개선하면서 유료 작전을 고수했다. 6개월이 지나자 흑자로 돌아섰다. 이제는 월 3백만원을 너끈히 버는 사장님이 됐다. 방문자도 주말이면 하루 4만~5만명이나 된다.

"게임 분야의 대가가 될 겁니다. 아줌마라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라며 크게 웃는 소리에 때 이른 더위가 싹 가신다.

◆e세상에 집 짓는 여자=우연치곤 참으로 행운이 깃든 우연이었다. 주부 송혜진(36.경기도 고양시 탄현동)씨는 언니의 권유로 '아줌마닷컴' 을 알게됐다.

이게 미국 회사에 홈페이지를 제작.공급하는 계기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애 둘을 키우며 정신없이 사느라 그때서야 인터넷이란 걸 알았다.

지난 1년간 송씨는 10여개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팔았다. 미국에 사는 한국 교포 가정이 주 고객이다. 가격은 개당 30만원. 2백만원까지도 받는 시중가에 비해서 턱없이 싸다. 하지만 홈페이지를 갖고 싶었던 자신의 열망을 되살리며 최소한의 돈만 받는다.

"처음 인터넷에서 가족 홈페이지를 봤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도 한번 만들어보자 싶었죠." 2000년 봄의 일이었다. 애써 입력한 자료를 사소한 실수로 날려가면서 밤 새워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순전히 인터넷에서 찾은 무료 교육 프로그램이 교과서였다.

"홈페이지가 깨끗하고 감각적"이란 주변의 평과 함께 제작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편의 은근한 아내 자랑이 계기가 됐다. 남편의 선배가 가족 홈페이지 제작을 요청했던 것.

미국에 있는 부모님과 인터넷으로 정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송씨는 정성껏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우연은 이어졌다.

이를 본 미국의 교포 웹디자이너가 계약을 하자고 제의해왔다. 요즘은 미국인 가정을 상대로 판매할 홈페이지를 준비 중이다. 이제는 값도 제대로 받을 생각이다.

"아이와 남편이 자랑스러워 하니 기쁘죠. 나 스스로가 귀하게 여겨지니 더욱 뿌듯합니다."

"나같은 아줌마가 뭘"이라며 지레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송씨는 "숨어있는 재능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남편이 남기고 간 컴퓨터=홍선의(52.대전시 법동)씨는 아침마다 눈 뜨기가 무서웠다. 오늘은 또 뭘 하며 시간을 죽이나. 2000년 5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홍씨는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다.

아침이면 나란히 약국으로 출퇴근하던 남편을 가슴에서 떠나보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때 홍씨의 마음을 붙들어 맨 것이 남편이 애지중지하던 컴퓨터였다.

남편 친구들이 e-메일로 보낸 위로 편지에 답장을 쓰느라 컴퓨터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신문에서 아줌마닷컴을 소개한 기사를 보고 접속을 해 봤다.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어서'였다.

남편을 추모하는 글을 아줌마닷컴에 올리자 격려 메일이 줄을 이었다. 가슴으로 쓴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20년간 일기를 써 온 글솜씨도 한 몫했다.

주위의 권유에 따라 '나의 가을은 이제 한살'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홀로 된지 1년 만이었다. 시집 출판을 계기로 홍씨는 '세상으로의 복귀'에 성공했다.

5월 초에는 두번째 책, '자전거 탄 풍경(대산출판사)'을 냈다. 웹 상의 홍씨 글을 열렬히 좋아하던 닥종이 인형 작가가 공저자다. 작품 사진을 출판하게 된 인형 작가가 홍씨에게 에세이를 써달라고 부탁했던 것.

요즘은 여기저기서 원고 청탁이 줄을 잇고 있다. 어엿한 작가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받는 인세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심리적 소득이 귀중한 것이죠." 홍씨는 50대 이상의 아줌마들에게 넷세상 초대장을 보내고 싶단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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