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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28주부터 출산 후 한 달까지 산모·신생아 통합관리 시스템 갖춰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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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호 06면

강원도 정선군에 사는 박모(35)씨는 지난 3월 쌍둥이를 출산했다. 그가 아기를 낳은 곳은 강릉에 있는 강릉아산병원. 집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100㎞ 거리다. 각종 산전(産前)검사와 진료도 강릉에서 받았다. 고령 임신인 데다 쌍둥이를 가져 산달을 앞두고는 매주 병원을 찾았다. 왕복 3시간 이동이 고역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박씨는 정말 힘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무너진 출산 인프라] 고령고위험 산모 대책도 시급

“조산 가능성이 있어 아기들이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강원도에 인큐베이터가 있는 병원은 세 곳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병원 옆에 가서 살 수도 없고….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매일 걱정의 연속이었어요.”

다행히 박씨는 건강하게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같은 병원에 다니던 또 다른 쌍둥이 임산부는 큰일을 겪을 뻔했다. 갑작스러운 진통으로 구급차를 불러 영월에 있는 집에서 강릉까지 130㎞를 달려온 것이다. 당장이라도 아기가 나올 수 있는 응급 상황을 구급차 안에서 보낸 그의 사례는 분만취역지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모성사망비 11.5명…OECD 하위권
대표적인 분만취약지인 강원도에선 종종 생기는 일이다. 고위험 분만엔 속수무책인 곳이 태반이라 고령 산모, 다태아 임산부는 장거리 이동을 감수해야만 한다. 강원도에서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의 응급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곳은 세 곳이다. 춘천의 강원대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강릉아산병원이다. 홍천·인제·정선·영월 등에 사는 산모들은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한 시간 이상 차를 타고 와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강원도의 모성사망비(출생아 10만 명당 산모사망 수)가 27.3명으로 전국 최고인 이유다.

전문의들은 모자보건이 위협받는 상황이 강원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취약한 분만 인프라와 이송 체계, 고위험 산모 증가가 강원도만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모성사망비는 11.5명이다. 대부분 10명 이하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하위권이다.

산모 고령화와 그에 따른 고위험 임신의 증가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안고 있는 또 다른 고민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4년 28.83세였던 초산 연령은 2014년 30.97세로 높아졌다. 35세 이상 산모의 비중도 2004년 9.4%에서 2014년 21.6%로 높아졌다. 전문의들은 35세 넘는 산모의 나이는 다른 요인과 관계없이 위험 요소로 본다. 실제 위험이 나타나는 비율은 고령 산모에게서 압도적으로 높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산모가 25~30세 때 7%에 불과한 고위험 임신 비율은 35~40세에서 24%, 40세 이후에는 39%로 뛰었다. 전체 산모 중에도 40% 이상이 임신중독증·임신성당뇨 등 합병증을 지니거나 조산아를 분만하는 등의 고위험군에 해당했다.

이 같은 고령·고위험 산모 증가는 태아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조산아·저체중아가 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4.5%였던 32주 미만 조산아 비율은 2013년 6.5%가 됐고 2.5㎏ 미만인 저체중아 비율도 같은 기간 4%에서 5.5%로 뛰었다.

분만 인프라 붕괴에 대한 해결 방안이 단순히 산부인과를 늘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위험 산모는 분만까지 위험이 크다. 분만 따로, 신생아 따로가 아니라 산모·태아·신생아를 일관성 있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주산기(周産期)’ 관리다. 출산 전후를 뜻하는 주산기는 통상 임신 28주부터 출생 후 4주까지를 일컫는다. 인제대 상계백병원 심규홍(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때를 “가장 중요하고도 위험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출산 전에 산모나 태아에게서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분만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신생아과에서 치료하는데 태아일 때 발생한 문제를 신생아 전문의도 알고 있어야 한다. 연계 과정이라 산부인과·소아과 의사 한 명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일산백병원 박정우(산부인과) 교수도 “예전이라면 유산했을 상황에도 지금은 적극 치료하기 때문에 고위험 산모에 대한 특별 관리가 더 중요해졌다”며 “산모의 상황에 따라 신생아 관리도 달라져 이원화된 시스템보다는 통합 관리가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두 과가 유기적으로 연계될 필요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추진된 것이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다.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 소속이 아닌 독립체로 분만 관리와 신생아 관리를 통합 운영하는 조직이다. 1996년 정부 주도로 총합주산기의료센터 사업을 시작한 일본이 모델이 됐다. 지난해 강원대병원·충남대병원·계명대동산병원이 보건복지부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올해 센터를 열었다.

임산부 등록, 응급 네트워크 구축해야
지난 20일 춘천에 있는 강원대병원을 찾았다. 원내 어린이병원 3층에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센터가 있다. 센터는 수술실·분만실·모체태아집중치료실(MFICU)·신생아집중치료실(NICU) 등을 갖췄다. 정식 개소식은 이달 말이지만 운영은 지난해부터 해왔다.

이날 MFICU엔 8명이 입원 중이었다. 입·코에 호스를 줄줄이 연결한 중환자가 있는 일반 집중치료실과 달리 병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산모들은 평안하게 누워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병원장을 맡고 있는 황종윤(산부인과) 교수는 조기진통, 태반조기박리, 조기양막파열 등으로 입원한 이들이 중한 상태라고 했다. 24시간 살피며 집중 치료를 하지 않으면 태아와 산모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거나 초미숙아를 출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센터는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 처치만이 아니라 응급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일엔 태반조기박리 증상의 산모가 개인 산부인과에서 응급 이송됐다. 태아가 사망에 이를 수 있고 산모까지 과다출혈로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다행히 30여 분 만에 병원에 도착해 출산했고 산모는 하루 뒤 퇴원했다.

황 교수는 “예전엔 의료시설도 기술도 없어 사고가 생겼다면 요즘엔 기술은 있는데 시설이 부족해 사고가 생긴다. 안전한 출산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분만취약지 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그 주요 대상은 일반 산모다. 국내 모성사망비가 OECD 최저 수준인 상황에선 고위험 산모를 집중 관리해 조기 치료하는 정책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초 복지부는 2014년 3곳, 2015년 4곳, 2016년 5곳 등 단계적으로 고위험 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올해 지원 대상을 선정하겠다는 고시는 아직 하지 않고 있다.

고위험 임신이 느는 상황에서 또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다. 응급 시에는 의료 접근성과 빠른 이송 체계가 가장 절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역마다 대학병원급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1·2·3차 의료기관의 원활한 정보교류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사전에 고위험 산모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임산부등록사업이다. 특히 강원·전북·전남 등 의료취약지에선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 교수는 “고운맘 카드를 발급하고 보건소에 임산부 등록을 하고는 있지만 주로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이다. 산모 동의를 받아 가족력이나 산전 검사 결과 등을 등록시켜 고위험 산모를 조기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등록사업을 하고 있는 스웨덴·노르웨이는 모성사망비가 3~4명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춘천=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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