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켓&마케팅] 소비자를 웃겨라 … ‘뇌섹 기업’은 잊히지 않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8호 20면

지난달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만찬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힐러리 관련 농담 등으로 연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고 있다. 왼쪽은 오바마의 속마음을 과장된 몸짓으로 표현한 ‘분노 통역사’ 키건 마이클 키. [중앙포토]

지난 4월 25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특유의 입담으로 연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1920년부터 이어져 온 이 만찬은 대통령이 정책 현안이나 정치계 유력 인사를 소재로 풍자와 농담을 늘어놓는 전통으로 유명하다.

⑭ 재치·유머의 중요성

오바마는 미국이 불확실한 시대를 지나고 있음을 언급하며 “매년 수백만 달러를 벌던 친구가 지금은 아이오와주 길바닥에서 밴 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 ‘대중 속으로’를 외치며 차량 유세를 펼치고 있는 힐러리 전 국무장관을 농담 소재로 삼은 것이다. 힘든 대통령 생활로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자신과 달리 아내 미셸은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 그 비결을 물었더니 ‘그저 신선한 과일과 채소’라고 하더라며 “정말 약 올라!”하고 불평하기도 했다. 또 ‘분노 통역사’로 고용된 코미디언 키건 마이클 키가 점잖게 이야기하는 오바마의 속마음을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통역해 청중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오바마 케어’ 홍보, 일등공신은 개그
오바마는 올해 초 공적 의료보험 가입을 독려하는 2분짜리 동영상을 제작해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BuzzFeed)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거울 앞에서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를 흉내내는 등 백악관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대통령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연출했다. 보험 가입 마감일인 2월 15일을 강조하고 가입을 권유하기 위해 ‘몸 개그’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동영상은 공개 4일 만에 조회 수 4100만 회 이상을 기록해 ‘오바마 케어’ 홍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대통령 오바마에게 더 가깝고 친근한 느낌을 갖게 된 것은 당연지사다.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은 성숙하고 건강한 사람,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인식돼 호감의 대상이 된다. 직장에서 유머는 동료 간 친밀감을 높이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 기업 경쟁력을 상승시킨다. 얼마 전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직장인이 가장 뽑고 싶은 신입사원의 조건으로 ‘재치와 유머감각’이 ‘지적 업무 능력’에 이어 두 번째 중요한 역량으로 꼽혔다.

‘유머도 함께 판다’는 원칙으로 ‘펀 경영’을 지향해 온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무엇보다도 고객과 직원의 즐거움을 강조한다. “흡연을 원하시는 고객은 비행기 날개 위 스카이라운지를 이용해 주세요. 그곳에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이 기내 금연 안내 방송은 이 회사의 유머감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창업자인 허브 켈러허는 엘비스 프레슬리 옷차림이나 토끼 분장으로 출근하는 등 유머러스한 경영자로 잘 알려져 있다. 유쾌한 고객 체험과 기업문화는 뛰어난 재무 성과와 브랜드 명성으로 이어진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지난 42년간 연속 흑자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포춘이 발표하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 7위(2015년)에 올랐다.

‘싸다구’라는 소리와 함께 신동엽이 따귀를 맞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소비자 웃음을 터뜨리는 모바일 쇼핑 앱 ‘쿠차’의 광고.

유머는 긍정적 감정 이끌어내는 효과
고객과의 소통에서도 유머는 메시지 전달을 원활하게 하는 윤활제 역할을 한다. 제품의 혜택을 늘어놓기보다 유머를 더하면 메시지를 반박할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제품·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감정을 이끌어낸다. 미국에서는 피부암 예방을 위한 공익광고 캠페인에도 웃음 요소를 가미해 자외선 차단제 사용 률을 20% 높이는 효과를 창출했다.

소비자를 웃게 만드는 유머 코드는 다양하다. 자극적인 소재, 과장된 몸짓은 주목도를 높이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특정 용어나 음악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유행어를 만들기도 한다. 모바일 쇼핑 앱 ‘쿠차’의 광고는 개그맨 신동엽이 ‘싸다구!’라는 소리와 함께 따귀를 맞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모델의 익살스러운 표정, 독특한 카피가 재미를 더해 ‘쿠차는 싸다’는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어두운 현실과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삼아 상품 가치를 알리는 냉소적 유머는 타깃 고객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청년실업, 열정페이, 갑질논란 등 현재 한국의 청년들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풍자한 아르바이트 정보업체 알바몬의 광고를 예로 들 수 있다. 대한민국 법정 최저시급이 무려 370원이나 올라 5580원이 되었다며 이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당장 알바몬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라는 내용이다. 여기에 ‘알바가 갑이다’는 반어적 표현을 사용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기지 있는 대응은 브랜드의 인간적 매력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해충 방제 기업 세스코는 2000년 인터넷 게시판을 오픈한 이후 고객의 엉뚱한 질문에도 재치 있는 답변을 제시해 입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고객이 ‘바퀴벌레나 모기를 영양식으로 먹어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으면 해충 전문가가 ‘바퀴·모기 등의 해충은 고단백질로 영양가는 높습니다. 그러나 수십 종의 병원균을 지니고 있으니 사전처리를 잘하시고 드셔야 합니다’라고 답하는 식이다.

물이 끓으면 새소리를 내는 ‘버드 케틀’(위)과 인종화합의 염원을 담은 양념통(아래).

유머감각은 제품 디자인으로도 표현된다. 1985년 이탈리아 생활용품 업체 알레시(ALESSI)는 건축가 마이클 그레이브스에게 디자인을 의뢰해 물이 끓으면 주둥이에 앉은 작은 새가 새소리를 내는 ‘버드 케틀(Bird Kettle)’을 출시했다. 이 유쾌한 제품은 지난 30년간 전 세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왔다.

따뜻한 메시지를 담은 디자인도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콜롬비아 출신 디자이너 알베르토 만틸라가 제작한 허그(Hug) 소금·후추통은 흰색 소금통과 검은색 후추통이 서로를 감싸안는 생김새다.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두가 열정과 존경심을 가지고 서로를 대해야 한다는 인종 화합의 염원을 보여준다. 이 제품은 2003년 IDEA 디자인 어워드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다.

제품과 연계성 없이 자극적이기만 한 유머는 관심 끌기에는 성공할지라도 메시지 전달과 설득에는 실패한다. 2013년 미국 너츠 회사 원더풀 피스타치오는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던 가수 싸이를 수퍼보울 시즌 광고의 모델로 기용했다. 광고는 싸이가 피스타치오 인형들과 말춤을 추는 내용이었다. 요란한 음악과 춤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전문가들은 “너츠 애호가들의 취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델의 인기에만 의존한 ‘게으른’ 광고”라는 악평을 내놓았다.

매력없는 모범생 대신 ‘뇌섹 기업’ 돼야
유머감각이 풍부한 사람은 창의력과 순발력은 물론 타인의 복잡한 감정 상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공감력이 뛰어나다. 이런 정서적 교감 능력은 스트레스 상황을 극복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불만 고객을 관리하는 과정에서도 순발력과 섬세함을 발휘한다. 화난 고객이 e메일을 보내면 사용된 단어를 재빨리 소프트웨어로 분석해 감정형(Feelers), 추진형(Drivers), 오락형(Entertainers), 사고형(Thinkers)의 4개 성격 유형으로 분류해 맞춤식으로 대응한다. 위로받기 원하는 감정형 고객에게는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문제 해결의 요점과 결과를 알고 싶어 하는 추진형 고객에게는 핵심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식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집안·학력·외모 등 훌륭한 조건을 두루 갖춘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에 이어 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유머러스한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 대세다.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을 재치있게 전달하는 대상을 선호하는 현상은 소비시장도 다를 바 없다. 우수한 제품 품질과 기술력, 뛰어난 디자인 감각, 대를 이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이라도 남다른 개성과 여유로운 멋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모범생 수준에 머무른다.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유머는 실없는 우스개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경영자나 정치인의 위트 있는 한마디가 대중을 매료하듯 기업도 신선한 유머로 반전 매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세계 최대 IT기업 구글은 매년 만우절이면 소소한 장난으로 유머감각을 발휘한다. 올해에는 구글맵을 사용한 팩맨(Pac-Man) 게임을 깜짝 이벤트로 선보였다. 타지마할·개선문 같은 세계적인 명소부터 평양, 심지어 내 집 앞까지 구글맵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장소를 배경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에 전 세계인이 열광했다. 구글의 유머는 ‘구글다움(Googliness)’에서 나온다.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업무 환경, 스스로 통제 가능한 느슨함을 즐기는 ‘구글리’한 직원들이 만드는 구글다움이다.

준비된 자기 멘트에 집착하는 유머 초보와 전체 상황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프로의 차이는 나다움에 대한 확신과 타인을 배려하는 여유에 있다. 엄친아의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춘 기업이라면 지적이면서도 유쾌한 ‘뇌섹 기업’으로의 변신을 시도해 볼 만하다.



최순화 소비자학을 공부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현재 국내외 소비시장 트렌드 분석, 브랜드 관리 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반감고객들』(2014), 『I Love 브랜드』(공저, 2010)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