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전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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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도회의 희뿌연 새벽 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에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큰 딸애를 부르는 낯익은 음성이 들렸다.
조반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황급히 대문을 열고, 땀에 흠씬 젖으신 아버님과 함께 칠이 벗겨진 자전거를 받아서 집안으로 들여 놓는다.
먼길을 달려오신 아버님께 찬 물수건을 내놓으며 그간 건강하셨음을 확인한다.
올해 여든을 바라보시는 아버님께서는 버스를 타거나 걸어다니시는 것보다 자전거를 이용하시는 것이 훨씬 편안하시단다.
가끔 손녀들이 보고싶을 때는 차가 덜 다니는 이른 새벽을 틈타 운동도 할겸 70리나 되는 길을 시골집에서 먼동이 틀때 출발하셔서 곧잘 우리집을 다니러 오신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만류하는 그이더러 자전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으니 그런 걱정일랑은 말라고 하신다.
시골에서는 집앞 논의 물꼬를 보실때나 5일장이 서는 읍내에 나가실 때나, 친구분 집에 가실 때는 언제나 자전거와 함께 하신다. 처음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버님과의 오랜 생활에서 수긍을 하고 있던 터다.
띄엄띄엄 다니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는 불편함과 비좁은 버스를 비적거리면서 오르느니 속 편안히 당신께서 가고 싶을때 구애없이 자전거를 타고 아무곳에나 쉽게 다닐수 있고, 장터에서 산 물건들을 싣고 올수 있어 편안하시단다.
아무리 자전거 타시는데 자신이 있으셔도 연세를 생각하시라는 나의 걱정에 손을 내저으시면서 아직도 마음은 청년이라고 하신다.
어머님 다음으로 아끼고 없어서는 안될 것이 자전거라시며 행여 아이들이 손댈까봐서 구석진 곳으로 옮겨 다 놓으시는 아버님의 모습은 정말 연세보다 한 10년은 더 젊어보이신다. <부산시 북구 덕천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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