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1주년… 현지의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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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괴가 아웅산묘소 폭탄테러를 저지른지 1년. 그 테러현장인 아웅산 묘소는 천마디의 용변보다도 더 무거운 무언의 증언으로 테러행위를 고발해 주고 있었다.
아웅산 묘소는 사건당시 파괴된 지붕과 서까래는 물론이고 사방 벽까지 깨끗이 철거돼버려 차라리 낯선 느낌이었다.
반영자유투사 9명의 대리석 묘는 허공에 그대로 노출돼있어 허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출입구 앞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무장한 군인이 출입을 단속하고 있었다. 3천∼4천평 넓이의 이 묘역옆 숲에도 일반인의 접근이 일체 봉쇄되고 있다. 다만 까마귀와 참새떼만이 경비병의 단속을 받지 않고 무상출입이 가능할 따름이었다.
옛날같으면 한명의 묘지 관리인만이 묘지의 보전유지를 위해 배치돼 있었을 것이고 출입은 누구나 항상 자유롭게 할수 있었던 곳이다.
더구나 인근 교코 나무숲은 아베크족들의 데이트장소로 한몫을 했던 곳이다. 한 시민은『아웅산 사건때문에 우리는 휴식처를 잃은 기분』이라고 안타까와했다.
1년전 북괴의 아웅산폭탄테러로 찢긴 랭군시는 그후 북한사람들이 모조리 자취를 감추면서 어느새 평온을 되찾고있다.
시중심부 서남쪽의 탕크로 동쪽변에 위치한 북괴대사관은 철문을 굳게 닫아놓은채 무거운 적막속에 싸여있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사관」이라는 문패가 걸려있던 자리는 볼썽 사납게 움푹 패어있고 그반대쪽 현관 기둥옆 홍보게시판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흰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대사관 건물도 페인트가 벗겨진 것은 물론, 군데군데 검푸른 곰팡이가 피어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이 대사관터의 소유주가 살고 있다는 옆집이 말끔히 단장돼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전 북괴대사 이성호가 관저로 썼던 2층 양옥은 표면상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진모가 이끈 3인조 북괴테러단이 잠임했던 랭군항 외항에도 붉은 깃발을 단 북괴선박의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다.
북괴기술자 4명이 파견되어있던 랭군인근의 시리암 주석제련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버마사람들은 아웅산 폭음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있다. 이 끔찍한 사건의 수사도 종결된지 오래며 버마정부도 유엔에 제출한 사건전모보고서에서 이사건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혔다.
한 서방외교소식통은 이사건에서 버마인들이 느끼는 배신감은『쉽사리 사라질수 없을것』이라고 말했다. 【랭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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