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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 서당 "세상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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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청학동 몽양당 서당에 입당한 초등학생들이 5일 여가시간을 맞아 눈썰매를 타고 있다.

진지한 표정으로 활쏘기를 배우는 아이들은 청학동 서당마을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동=송봉근 기자

8일 오전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하동군에 있는 청학동 몽양당 서당 앞마당.

해발 800m에 자리 잡아 영하 10도를 오르내리지만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대나무를 잘라 활을 만들고 있다. 활을 다 만든 학생들은 훈장의 지도에 따라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긴다. 한 쪽에서는 널뛰기하는 여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서당 뒤 눈 쌓인 비탈길에서는 비닐부대를 깔고 앉아 미끄럼을 타는 개구쟁이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고, 계곡 얼음 위에서는 팽이치기가 한창이다.

회초리와 엄한 훈장으로 상징돼 온 청학동 서당들이 변하고 있다. 교육과정에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전통놀이를 많이 가미하면서 '한문과 예절을 배우는 놀이터'로 바뀌고 있다. 훈장들은 유건(儒巾.조선시대 선비들의 일상용 관)을 쓰고 수염을 길렀을 뿐 동네 형님처럼 아이들에게 다정다감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서당에 일곱 번째 왔다는 이승주(14.경북 의성군 도리원 초등학교 6년) 군은 "처음에는 종아리를 많이 맞아 무서웠으나 요즘은 서당생활이 재미있어 방학만 되면 오고 싶다"고 말했다.

서당들의 이러한 변신은 엄격한 교육만으로는 지원자가 갈수록 줄기 때문이다. 1998년 네 곳에 불과하던 서당은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리면서 한때 30여 곳까지 늘어났으나 지금은 23곳으로 줄었다. 도시에서 인터넷 게임과 TV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지리산 산골의 서당생활을 힘들어 하는 것이다.

몽양당 서당 김봉곤(39) 훈장은 "서당의 경쟁력인 인성과 예절교육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서당도 마찬가지다. 가장 오래된 데다 엄하기로 소문난 청학서당(대표 서재옥 훈장)도 제기차기와 널뛰기를 하루 한 시간씩 넣었다. 명륜학당(대표 이정석 훈장)도 도인체조와 마당놀이를 포함했다. 판소리와 무예를 지도하는 곳도 있다. 몽양당 서당에서는 동화(童話)로 한자를 배우는 온라인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회초리를 때리는 서당들은 사라졌다. 그날 배운 한문 글귀를 제대로 못 외웠을 경우 발바닥 한 대쯤 때리는 게 고작이다.

그렇다고 한문과 예절교육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부모님에 대한 감사 묵념과 체조를 시작으로 오후 10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문과 예절을 배운다.사자소학.명심보감.격몽요결(擊蒙要訣).소학. 사서삼경 등을 가르친다.1~2주일의 과정을 마치는 날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며 큰절을 올리는 자녀의 의젓한 모습에 눈물을 흘리는 학부모도 많다.

청학동 서당마을 측은 이번 겨울방학에 전국에서 1만5000명이 다녀갈 것으로 보고 있다. 1주 교육비가 20만원쯤 되니 산골에 30여억원이 뿌려지는 셈으로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된다.

"부생아신(父生我身)하시고 모국오신(母鞠吾身)하시며, 복이회아(腹以懷我)하시고 유이포아(乳以哺我)하도다."(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도다. 배로써 나를 품어 주시고 젖으로써 나를 먹여 주시도다.)

오늘도 청학동 서당마을에는 밤늦도록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리산=김상진 기자<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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