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 무료 노인요양원 세운 진옥 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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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후원자들의 자필 이름을 새긴 도자기 타일로 벽을 꾸몄다고 말하는 진옥 스님.

한 스님의 불우노인 사랑과 4000여 명의 정성이 전남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 바닷가에 '하얀연꽃'을 피워 냈다.

하얀연꽃은 언덕 위 2000평에 지상 3층, 연건평 720평 규모로 최근 문을 연 무료 노인전문 요양원. 시설은 노인들이 생활할 방 46개와 주간보호실.물리치료실.목욕탕.강당 등을 갖췄다.

하얀연꽃은 다른 노인요양원과 크게 다르다. 28억원의 사업비 중 공공예산 지원금은 여수시로부터 받은 2억5000만원이 전부다. 90%가 넘는 25억5000만원은 전국 불교 신도들의 시주와 기업의 후원금, 외국인의 송금 등으로 마련됐다. 4000명이 참여했다.

여수시 석천사의 주지인 진옥 스님이 4년 동안 '오천불(五千佛) 모시기 기도' 등을 통해 모은 것이다. 석천사 재무담당인 김연옥씨는 "기도에 동참한 사람들이 작은 불상 한 기당 30만원씩 시주했다"고 말했다.

하얀연꽃은 시주한 사람들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자필로 도자기 타일에 쓰게 한 뒤 구워 강당의 양쪽 벽을 장식했다. 진옥 스님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마다하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자식 등이 있지만 제 구실을 못하고 공공의 복지혜택도 못 받는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을 돌보기 위해 사업비를 자체 조달했습니다." 1993년부터 10여 년 간 여수시의 의뢰를 받아 노인복지회관과 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면서 이 같은 문제를 고민했고, 현재의 하얀연꽃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하얀연꽃은 현재 형식상 보호자는 있지만 방치되다시피 하고 거동이 힘든 할머니와 할아버지 11명을 보살피고 있다. 앞으로 그 수를 6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하얀연꽃은 무료 시설임에도 유료 민간시설보다 훨씬 나을 만큼 모든 것이 고급이다. 석천사 관계자는 "스님께서 국내 노인요양원들은 물론 일본.캐나다.뉴질랜드 등의 시설까지 반영할 만큼 신경 써 꾸몄다"고 귀띔했다.

모든 노인에게 1인 1실, 부부 1실을 주고 있다. 방마다 TV.옷장 등을 비치하고, 라운지.복도의 바닥은 마루를 깔고 난방시설을 했다.

노인들이 주로 지내는 2, 3층의 복도와 라운지는 갤러리를 연상케 할 정도다. 벽에는 스님이 그동안 수집하거나 기증받은 그림 40여 점을 걸었다. 또 불상을 비롯한 각종 유물 150여 점을 박물관처럼 개별 조명까지 해 전시하고 있다. 또 식당 인테리어를 고급 카페테리아처럼 환하고 고급스럽게 꾸몄다.

진옥 스님은 "어렵게만 살던 분들이 마지막에라도 편안하게 살다 가게 하기 위해 가급적 고급스럽게 꾸몄다"며 "나눔은 욕심을 덜어 주는 수행이며, 나도 이익이 되고 남도 이익이 되는 대승의 삶"이라고 말했다.

여수 돌산도=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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