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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배출 ‘톱10’ 중 한국·독일만 거래제 전면 시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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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디스플레이 업체인 A사 임원 김모(52)씨는 탄소 배출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올해부터 2017년까지 정부가 할당한 배출량을 맞출 수 없어 6000억원의 과징금을 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배출권 비용 부담은 그대로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 한국산 액정표시장치(LCD) 제품이 중국산보다 ㎡당 7000원까지 쌌는데 가격 차가 300원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회사는 배출량 규제를 피하기 위해 중국으로 생산물량을 돌리는 것을 검토 중이다.

 중소기업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탄소 배출권을 살 돈은 물론이고 감축 기술도 부족하다. 신재생에너지 업체 KG ETS는 지난 3월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산업 폐기물을 태워 열과 전기를 생산하는 친환경 업체인데도 배출량을 할당받아 불합리하다”는게 요지다. 이 회사 김상훈 차장은 “정부가 배출권 할당을 강행하면 조업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연 매출의 3%를 과징금으로 물어야 할 판이라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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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한 탄소 배출권 거래제가 기업 발등에 불로 떨어졌다. 산업계가 집단 반발하는 건 ‘배출권=돈’이어서다. 정부 규제에 따라 525개 업체가 2017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 줄여야 한다. 여기엔 반도체·철강·자동차·디스플레이 분야 국내 대표 기업이 포함됐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2017년까지 27조5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지적했다.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에 매년 배출할 온실가스 양을 정해 주고, 쓰고 남은 할당량을 다른 기업에 팔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20일 현재까지 거래물량은 16억t 중 1만t에 못 미칠 정도로 초라하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이명박(MB) 정부 시절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따라 추진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급변해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표준)’와는 거리가 먼 ‘갈라파고스 규제’가 됐다는 게 산업계 주장이다. 황진택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는 “선진국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 부담을 규정한 교토 의정서 효력을 2020년까지 연장하는 과정에서 미국·중국은 불참했다. 또 2012년엔 캐나다가 탈퇴했고, 일본·러시아는 2013년부터 감축 의무를 거부하는 등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과 뉴질랜드·카자흐스탄 같은 38개국에서 제도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배출량이 많은 10대 국가를 보면 한국과 독일에서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중국·일본·인도 등에선 대부분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지 않거나 일부에서만 시행 중이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산업계 요구에 대해 정부는 “기업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석유화학업종은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등 업종별 차이가 있는데도 일괄적으로 과도한 배출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서도 시각차가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연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총회를 앞두고 미국과 EU, 스위스가 탄소 배출 감축 계획을 제출했다. 중국도 6월 중 제출할 예정”이라며 “한국도 국제사회에 부응하는 수준의 탄소 배출 감축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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