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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아이셋맞벌이] 애 맡긴 죄인 … '납작 모드'는 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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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연말이다 뭐다 해서 며칠 동안 퇴근을 늦게 했더니 함께 사시며 아이들을 봐주시는 친정 엄마가 화가 나셨나 보다. 내가 감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애 봐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갑자기 외출을 하셨다.

'엄마도 그동안 힘들어서 그러시겠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딸한테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남들은 "친정 엄마가 아이들을 봐주시니 얼마나 좋겠느냐"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딸에게 친정 엄마가 편한 것처럼 친정 엄마도 딸이 편한지라 속마음을 그대로 말하거나 행동해서 오늘처럼 딸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는 일도 가끔 있다.

부모님께 아기를 맡기면 마음이 편한 만큼 신경 쓸 일도 커진다. 나이 드신 분들이 아이를 본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기분이 어떤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항상 눈치를 봐야 한다. 또 아이가 유난히 칭얼거린 날이면 퇴근하자마자 하루 종일 쌓인 짜증도 받아내야 한다. 하루 종일 업고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네 등의 넋두리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아이를 안겨 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휭 가버리실 때도 있다. 가끔 "아이 봐주는 공은 없다더라"하며 서운해 하시기까지 한다. 또 부모님이 아프시기라도 하면 "아이를 봐서 그렇다"며 남들이 한마디씩 한다. 그런 날이면 난 '애 맡긴 죄인'이 돼 머릿속이 하얘진다.

사실 아이를 맡기면 서로 간에 사소한 오해가 자주 생긴다. 서로의 힘듦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 이럴 때가 가장 힘들긴 하지만 아이를 맡긴 내가 항상 '납작 모드'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잊지 않는다. 그래야 부모님들이 덜 서운해 하시니까.

오늘도 나 혼자 점심도 거르며 많이 속상했지만 외출하고 돌아오신 엄마를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맞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저녁식사도 준비해 놓고 나름대로 신경을 썼더니 엄마 기분이 많이 나아지신 것 같다. 아, 이렇게 오늘도 무사히 넘어갔다. 남들은 나보고 어쩜 그리 씩씩하냐고 하지만 어쩌랴, 애들을 맡기는 데 있어서는 나도 소심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을.

박미순 레몬트리 기자

☞ 아이 맡길 때는 이렇게

① 아이 봐 주는 사람은 적어도 2명을 교대로 둬라=육아는 장기전이다. 1~2년 안에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이를 돌봐 주는 분의 체력이 바닥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한 사람에게 일주일 내내, 한 달 내내 맡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나는 아이가 한 명일 때도 평일에는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주말에는 학생이던 여동생에게 아르바이트 대신 아이를 보게 했다.

② 이웃 사람과 친해져라=아이를 키워 봤거나 키우고 있는 이웃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정말 도움된다. 아이를 돌봐 주는 사람에게 갑자기 일이 생겨 급하게 잠깐 맡겨야 할 때가 종종 생기는데 그때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다.

③ 믿어라, 무조건 믿어라=시어머니들 사이에서 손자 키우기 싫으면 '밥숟가락 쪽쪽 빨아서 아기 입에 한 번만 넣어 주면 된다'라는 우스갯말이 있다고 한다. 나와 남의 육아 스타일이 같을 수는 없다. 나는 내 식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 식대로 키우도록 내버려 두는 게 마음 편하다. 단점이라는 게 하나가 보이면 열이 보이는 것은 금방이니까, 처음부터 '혹시?'라며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잘하겠거니 믿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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