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안 입었느냐" 첫 인사 | 7년만에 남북 적대표 만난 판문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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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남북한 적십자 대표가 근 6년 9개원만에 다시 만나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은 30평 정도의 작은방.
이날 상오 9시쯤부터 자유진영측 70여명, 북측 40여명 등 보도진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9시 30분쯤에는 발을 떼기도 힘들 정도로 회의실안은 보도진들로 가득찼다.
남배한 보도진들 중 평소 판문점을 출입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서로 악수를 교환하고 담배를 나눠 피우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였으나 자유진영측 기자들은 분계선을 넘어 배측 회의장까지 들어가 말을 나누는데 반해 북측 기자들은 단 한명도 분계선을 넘어오지 않았다.
○…배한 J통신에 있다는 한 기자는 우리측 기자를 만날 때마다 『거기 집은 어땠느냐』 고 수재 피해를 당하지 않았는 지 묻기도 했으며 『북쪽에는 경기·강원도 일부 지방에만 비가 왔지만 평양에는 거의 비가 오지 않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북측 기자들은 17일 일찍 평양에서 출발, 이날 밖을 개성에서 지내고 왔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개성 근처에는 남쪽으로 보낼 물자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상오 10시 정각 한웅식 배적 부위원장을 수석 대표로 한 북한 적십자사 대표단이 먼저 입장했으며, 이어 이영덕 수석 대표 등 우리측 대표 5명이 입장해 대좌.
먼저 이 수석대표가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영덕입니다. 우리 대표를 먼저 소개해 드리죠』라며 대표단을 소개.
한웅식은 이 수석대표의 소개가 끝나자 『그럼 우리도 소개하지요』라면서 『다 아시겠지만 최씨가 두 명입니다』고 조크.
이 수석대표는 이를 받아 『그럼 최씨가 모두 세 사람이군요』라고 말해 한때 웃음.
○…이 대표가 이어 『40년동안 분단이 계속돼 왔지만 오늘은 한번 결실을 맺어 봅시다』라고 제의하자 북측 대표는 『우리 모두 성의를 갖고 차근차근 풀어 나가자』고 대답.
이 수석대표는 이에 『진지하게 동포애를 발휘해 회담에 임해 보자』고 말했는데 이때 사진 기자단이 『양측 대표들이 악수를 하며 포즈를 취해 달라』고 요청하자 양측 대표들은 만민에 웃음을 띠고 악수를 나나눈 뒤 착석.
양측 대표들은 회의 진행에 앞서 『기자들에게도 시간 여유를 주자』며 10분간 답소를 나눈 뒤 곧바로 회의를 시작.
이날 북적의 한웅식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선전성이 강한」 인사말을 통해 『오늘은 민족과 세계 인민의 커다란 관심과 이목이 집중한 가운데 남한 수재민들에게 물자를 보내기 위해 실무 접촉을 갖게 돼 기쁘다』며 재난을 당했을 때 물자를 서로 보내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민족사에 있어 특기할 만한 사실이라고 인사.
말끝마다 동포애와 인도주의를 섞어 가면서 발언한 한은 이 물자가 수재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기에는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5인 가족으로 계산해 가구당 ▲쌀 2백 50kg ▲천 17m 등이라고 설명. 한은 의약품은 수해지역에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것이라면서 물자가 하루빨리 수재민들에게 전달돼 생활 안정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10여분간 발언.
○…상오 10시 30분 양측 대표의 발언이 끝난 후 양쪽 대표는 『절차 문제는 오늘 중으로마무리 하자』고 합의했으며 모임 성격을 회담이 아닌 「접촉」이라는 데도 전면 동의.
한은 양측 대표의 제안 발언이 끝난 뒤 『이 접촉에 상대가 있는 만큼 일련의 문제에 대해 하나하나 협의하고 공통점을 살피면서 차이점을 좁혀 오늘 중으로 마무리짓자』고 했는데 이 대표가 『뮈, 오전중으로 끝내자』고 하자 한은 『몇분 후에 끝내자』고 말꼬리를 잡기도.
○…이날 회의장에 나온 북한측 기자들은 자기네가 준비한 물자는 비타민·모직·포플린이라고 소개하며 여느 때와 달리 주는 입장에서의 우월감을 표시해 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이번 접촉 사실이 한국 국내에 보도됐는지 여부와 외국의 반응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 북한측의 폐쇄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회담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측 대표들의 여유있고 포용력 있는 자세에 비해 북적측 대표들은 발언 때마다 미리 준비한 유인물을 읽거나 아니면 접촉 종사원들이 전해주는 쪽지를 받고 서로 발언 내용을 숙의하는 등 다소 경직된 모습.
북적측의 한 대표의 경우 계속 땀을 흘리며 수시로 냉수를 마시기도 했는데 대화 도중 한적측의 이 수석대표가 『일생동안 학교 선생님을 했다』는 말을 하자 한 대표는『나의 선생이란 말이오』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접촉을 취재 나온 AP통신의 「에드윈·화이트」 기자는 접촉 결과에 대해 『어떤 성과를 가져오든 간에 앞으로 남북이 이런 문제에 대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생각한다』고 말했고 일본 아사히신문의 「고바야시」 기자는 이날까지의 접촉에서 양측 모두가 정치적 문제를 들고 나오지 않은 점을 중시하면서 『이번 접촉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남북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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