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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35년째 보듬지 못하는 ‘5·18 광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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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제3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 국립 5·18 묘지에서 정부 주재로 열렸다. 하지만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은 같은 시각 금남로에서 따로 기념식을 가졌다. 강산이 세 번 반 바뀌었음에도 5·18을 둘러싼 분열상이 치유되지 못한 채 반쪽 기념식이 되풀이된 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념식에 불참했고, 기념사조차 쓰지 않았다. 대신 정부 대표로 참석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낭독한 기념사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5·18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고 영령들을 기리는 대목은 처삼촌 묘 벌초하듯 건성으로 지나간 반면 4대 구조 개혁 같은 현 정부 시책을 홍보하는 데 바빴다.

 박 대통령은 대선을 열흘 앞둔 2012년 12월 5일 광주를 찾아 “호남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집권하자 임기 첫해에만 5·18 기념식에 참석했을 뿐 2년째 불참했다. ‘집권하면 곧바로 대탕평에 나서겠다’는 공약을 믿고 표를 던진 국민들이 우울하고 답답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가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또다시 막은 것도 문제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이 노래는 2년 전 여야 의원 162명이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자고 결의까지 한 바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임’이 김일성 아니냐는 보수단체의 황당한 주장 등을 핑계로 3년째 제창을 막았다. 이번 기념식이 반쪽으로 치러진 것도 유족들이 이에 반발해 불참했기 때문이다.

 기념식 모습도 가관이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민주화 투쟁의 주제곡으로 종북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며 노래를 제창한 반면 그 옆의 최 부총리는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그는 여당 원내대표 시절 기념곡 지정 결의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이다. 이 무슨 어색하고 치졸한 모습인가.

 80년 5월 신군부의 무력 진압에 목숨을 걸고 맞선 광주 시민들의 희생은 이 나라 민주화의 소중한 씨앗이자 전 세계 민주주의사(史)의 이정표가 됐다. 광주 정신의 연장선에서 87년 체제가 탄생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과 동서 화합 노력을 거쳐 대한민국은 확고한 민주국가 반열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5·18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라 답했다. 그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 내년 5·18 기념식부터라도 성의 있게 임해야 할 것이다.

 광주 시민들도 의식을 바꿔야 한다. 5·18 전야제에 보수정당 수장으로는 처음 참석한 김무성 대표에게 일부 지역 인사들이 물병을 던지고, 행사장에서 쫓아냈다. 숭고한 광주 정신을 훼손하는 추태다. 5·18 은 특정 지역과 특정 정파만의 기념일이 아니다. 온 국민이 광주 정신을 기리고, 민주주의의 심화를 다짐하는 대한민국 전체의 기념일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