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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오사카 통합’ 좌절 "연말 임기 끝나면 정계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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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하시모토 시장

“위안부는 필요했다”는 망언을 일삼았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46) 일본 오사카(大阪)시 시장의 정치생명이 사실상 끝날 전망이다.

 오사카시는 17일 하시모토 시장이 주창하는 ‘오사카도(都) 구상’의 당위성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이날 오후 9시 발표된 각종 출구조사 결과 하시모토의 주장에 찬성하는 표가 51~52%, 반대하는 표가 48~49%였고, 개표 막판까지도 찬성표가 많았지만 유권자의 17%를 차지한 사전투표가 승부를 결정했다. 최종 개표 결과는 반대 50.4%(70만5585표), 찬성 49.6%(69만4844표)로 10741표차로 역전됐다.

 하시모토는 선거전 내내 “주민투표에서 지면 정계를 은퇴하겠다. (부결되면) 시민 여러분의 감각을 내가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이니 정치인으로서 실격”이라고 공언했다.

 패배가 확정된 뒤 회견에서도 하시모토는 “올해 말까지 임기를 마친 뒤 정계를 떠날 것”이라고 못박았다.

 2008년 변호사에서 방송인을 거쳐 오사카부(府) 지사로 정계에 입문한 하시모토는 직설적이면서 논리적 화술로 노회한 정치인에 익숙해 있던 일본 유권자를 환호하게 했다. 2012년 9월에는 오사카를 기반으로 한 신당 ‘일본유신회(유신당의 전신)’를 창당,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한다’는 말처럼 2013년 “전쟁이란 상황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필요했다”는 망언을 내뱉으면서 인기가 급락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가 바로 ‘오사카도 구상’의 주민투표였다.

 하시모토는 “오사카부와 오사카시의 중복 행정으로 인해 엄청난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며 “두 조직을 통합해 ‘오사카도’를 만드는 안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하자”고 도박에 나섰다. 오사카시를 2017년 4월 폐지하고 도시계획·산업진흥 등 행정권한을 오사카부로 일원화한다는 안이다. 대신 오사카시 안에는 5개의 특별구를 설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두 곳을 합하면 총예산 8조엔 중 5%에 해당하는 연간 4000억엔(약 3조6400억원)의 중복 재원을 아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자민·민주·공산 등 ‘반 하시모토 연합’으로부터 “실제 삭감효과는 연 1억엔(약 9억1000만원)도 안 되며 오히려 특별구 신 청사 마련에 600억엔이 소요된다”는 반격을 받았다.

 하시모토의 패배가 확정되면서 일본 정치권에도 큰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당장 하시모토가 사실상 이끌어 온 유신당이 분열될 전망이다.

 지지(時事)통신은 “도쿄와 오사카 양대세력으로 양분돼 온 유신당에서 도쿄 쪽 의원들이 민주당 쪽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동안 존재감을 상실했던 제1야당 민주당이 야권세력의 재편을 주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런 시나리오를 우려해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는 내심 하시모토의 승리를 간절히 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아베는 복심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을 통해 “중복 행정 해소에는 당위성이 있다” 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개헌파인 하시모토가 이번에 승리해야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유신당이 일정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고, 그래야만 자민당을 합해 개헌발의에 필요한 ‘중·참의원 3분의 2이상 의석’을 넘어설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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