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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얼빠진 국토부, 이러고도 민생 얘기할 자격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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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영세 상인들의 권리금을 보호하기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지난 13일 시행됐지만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권리금 산정기준과 표준계약서도 아직 만들어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권리금을 얼마로 정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건물주·세입자가 계약을 거부하거나 미루면서 상가 임대차 시장이 혼란에 빠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은 입만 열면 “국회가 민생 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지만 정작 국회가 법을 통과시켜 줘도 넋 놓고 있던 정부가 거꾸로 ‘민생 발목 잡기’에 나선 꼴이다.

 이번에 통과된 법에는 권리금 산정기준이 없을 경우 주변 시세나 감정가 중 낮은 것을 택하도록 돼 있다. 세입자들은 시세대로 계약을 했다가 자칫 권리금을 손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건물주는 건물주대로 권리금 소송이 빗발칠까 걱정이다. 벌써 일부 건물주들은 손해배상 소송에 대비해 임대료 인상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분쟁에 대비해 만들려던 분쟁조정위원회마저 국회 조율 과정에서 설립이 무산되면서 자칫 권리금 분쟁 소송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에선 “영세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되레 ‘분쟁 양산법’이 되게 생겼다”고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런 혼란의 책임은 전적으로 국토부에 있다. 국토부는 “이렇게 빨리 법이 통과될지 몰랐다”며 핑계 대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권리금 보호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주요 내용 중 하나로 지난해 9월 정부가 앞장서서 대책 발표를 하고 국회 통과를 채근했던 사안이다. 그래 놓고 여태 실무 준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직무 태만을 넘어 직무 유기에 가깝다.

 국토부는 뒤늦게 권리금 산정기준과 표준계약서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지만 일러야 다음달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막상 작업을 해 보니 권리금 산정이 워낙 변수가 많고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애초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밀어붙이다가 생긴 일이란 얘기다. 이런 얼빠진 정부를 믿고 생업에 종사하는 국민만 불쌍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