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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대 내다본 과거사의 정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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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길승흠 교수=전두환 대통령의 일본공식방문이 끝났습니다.
방일기간중 과거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일황의 공개적인 유감표명도 있었고 성숙한 동반자관계가 양국지도자에 의해 강조되는 등 나름대로의 성과가 느껴집니다.
▲안승철 한국개발연구원장=이번 방일의 가장 큰 의의는 한일양국이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했다는 점입니다.
일황이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고 우리국민은 엄숙한 마음으로 이를 경청하는 「진사」와 「용서」의 의식이 이루어졌습니다.
▲길교수=65년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됐을 때는 냉전이라는 상황 조건 때문에 그 내용이 우리에게 불리하고 일본에 유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국교정상화이후에도 일본의 대북한 등거리정책·문세광 사건·민청련사건 등 불미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양국관계에서 응어리 진 것이 풀리지 않고 오랫동안 그대로남아 있었습니다. 이번 방일은 20년전과는 달리 앞으로 다가올 2000년대를 내다보면서 과거에 매달리지 말자는 미래지향적 의지가 반영된 것이지요.
▲안원장=과거는 국민감정과 정치문제에 매달렸다면 미래는 이를 뛰어넘어 경제협력을 주축으로 원숙한 동반자가 돼야합니다. 이번 방일로 그 길이 열렸다고 볼수 있겠지요.
▲길교수=저는 방일의 성과를 보는 시각이 종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양국공동성명·일황만찬사·수상오찬사 등과 함께 작년 「나까소네」방한까지를 한 세트로 놓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작년1월「나까소네」의 방한 때는 40억달러 경협 등 실질적·구체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된 반면 이번은 일황의 사과발언 등 상징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어요. 그중 북한만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던 일본사회당이 남북한 등거리 조짐을 나타낸 것은 주목할만 합니다.
▲안원장=일황이 사과와 함께 한일양국의 교류사에서 지난6, 7세기 일본의 국가형성기에 한국으로부터 학문·문화·기술 등을 배웠다고 한 것도 주목할만합니다.
일황뿐아니라 「나까소네」수상도 오찬사에서 『수천년에 이른 두 민족의 교류기간중 대부분의 기간을 통하여 한국은 스승이었고 우리는 그 제자의 입장이었다』고 했지요. 이런 말들은 일본국민들에게 일본문학의 원류가 한국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는 계기가 된다고 봐요. 또 지금우리가 기술이전을 일본에 요구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주었던 것을 받으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지요.
▲길교수=일부 일인들이 일찌기 우리나라에 임나국을 세웠었다는 등 허무맹랑한 소리를 했던 것에 비하면 금석지감이 없지 않습니다.
이번 방일은 「가시적」인 것보다는 「상징적」인데 더 큰 의미가 있지만 안보·외교면에서의 성과는 단순히 상징적인 것만도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중동성명에 나타난 안보·외교적인 문맥과 교섭과정을 볼때 대북한·대소자세에 있어서 일본은 한국보다 좀더 육화적인것 같아요.
우리정부는 대북한 조항을 별도항복으로 하려하고 KAL기 격추·랭군사건 언급에도 상대국 이름을 박자는 입장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일본이 꺼린 것 같더군요.
그러나 일본의 이런 입장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일본의 이런 태도를 역이용해 우리의 대소·대중공 외교에 활용할 수도 있겠지요.
일본을 대공산권 외교창구로 활용해 88올림픽 등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중공현대화계획에도 참여할 가능성도 모색해볼 수 있을 겁니다.
▲안원장=요즘의 한일밀월관계는 동북아의 역학관계가 변화한데 따른 한일간의 새로운 접근이라고도 볼수 있지 않겠습니까.
▲길교수=동북아는 미·소·중·일 4극 체제의 접점이고 특히 소련이 동북아의 전력증강에 역점을 두고 있는만큼 미국은 이 지역에서의 소련세력의 확장을 극력 막아야할 처지예요.
그러나 미국으로선 매년 2천억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감당키 어려워 이 지역을 한-미-일 3각 안보체제로 묶으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공동성명에서 표명된 한반도조항도 이런 점과 관련해 볼만합니다.
▲안원장=경제분야에 관한 성과라면 우선 양국의 경제성장과 번영이 상호 유익하다는 시각을 일본이 인정한 점입니다.
한일간의 경제협력은 한쪽이 이익을 보면 한쪽이 손해를 봐야하는 「제로섬」게임구조가 아니라 상호이익을 보는 「난제로섬」게임의 구조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보자면 양국무역불균형해소를 위해 「축소균형」을 이루자는 것이 아니라 「확대균형」을 이루자고 표명하고 있습니다.
83년의 경우 우리의 대일 무역수지적자가 28억달러인데 하루아침에 이것이 해결되기는 어렵습니다. 양국의 무역을 총량적으로 늘려나가되 우리로서는 완만하게 수입을 줄이고 대신 수출을 늘려나갈 수 있도록 산업구조자체를 조정해 나가야만 합니다.
▲길교수=그러나 한일간의 산업구조로 보아 역조시정이 좀처럼 이뤄지기 어려운게 아닙니까?
▲안원장=바로 그점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품목은 자본재와 중간재가 주종으로 되어있어 이를 국산화하기 전에는 역조시정이 단시일 내에 이뤄지기 어렵지요.
▲길교수=결국 우리가 첨단기술을 이전 받아 우리의 산업구조를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재편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안원장=그렇습니다. 기술협력에는 과학기술협력과 산업기술협력이 있는 일본측은 상품화와 직결되는 산업기술협력에는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민간기업이 상품화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을 정부가 아무리 이전하라고 해도 잘될리가 없지요. 더구나 부메랑효과 운운하고있으니 기술협력은 당초부터 한계가 있다고 봐야지요.
▲길교수=그러나 양국정상이 이같은 현안문제 해결에 전진적 자세를 취해 나가기로 한 이상 그같은 정신이 민간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까.
▲안원장=물론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를 걸고있기는 합니다만 우리 스스로도 기술의 종류·단계 등을 잘 알아 흡수할 것은 흡수하고 어려운 것은 미리 대응책을 마련하는 등 수용태세를 갖춰야합니다.
▲길교수=무역적자·기술협력문제 등을 다룰 때 안보경협이라는 차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한반도에서 분쟁이 터지면 이것은 직접 일본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닙니까.
한일간 군사면에서의 직접안보협력이 어려운만큼 경제협력으로 우리의 전쟁 억지력을 증강시키는건 일본의 안보에도 플러스가 되는 것이지요.
▲안원장=남북한간의 군사력 균형이 지금만큼 이뤄진 것도 다 우리의 경제발전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일본의 안전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겁니다. 양국의 경제협력과정에서 이런 인식이 부각돼야할 겁니다.
▲길교수=재일 동포 법적 지위문제가 공동성명에서 별도의 항목으로 취급되긴 했으나보다 구체적인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일본은 이제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가적 성숙성·사회적 개방성을 갖고 재일 한국인문제를 다뤄야 할겁니다.
▲안원장=경제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공동성명의 태평양지역협력조항도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21세기엔 아시아태평양지역이 세계경제를 주도해 나가리라고 전망하는 학자가 많아요.
그렇다면 그 태평양시대를 맞아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협조해 나가느냐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길교수=흔히들 현재를 한·미·일 3국의 「밀월시대」라고들 합니다. 이것은 「레이건」「나까소네」라는 인물의 개인적 리더십과도 무관하지 않아요.
「레이건」미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누적된 재정적자를 감당키 어려운 국면이 나타나고 일본에서도 데탕트 지향의 내각이 구성된다면 지금과 같은 밀월관계도 변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이런 구조적 변화가 닥쳤을 때를 대비해 제2의 선택을 구상해 두어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안원장=경제문제도 단시일에 해결되기를 기대하긴 어려워요.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분위기를 바탕으로 후속노력이 전개돼야합니다. <정리=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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