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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매각 지연 손해’ 공격 … 한국은 ‘불법취득’ 역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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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호 21면

2006년 당시 역삼동 스타타워에 있던 론스타 사무실. 론스타는 이 빌딩을 2001년에 사서 2003년 매각하면서 250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중앙포토]

소송액 5조 원대에 이르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 정부간 투자자·국가간 소송(ISD) 심리가 15일(현지시간) 시작됐다. 이날 미 워싱턴 D.C에 있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열린 첫 심리는 양측 당사자와 법률 대리인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론스타, 투자자·국가간 소송(ISD) 미국서 첫 심리

심리에 앞서 정부 합동대응팀 간사인 김철수 법무부 국제법무과장은 “기선을 제압하는 측면에서라도 잘하겠다. 일반적으로 타협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지만 구체화된 것은 없고, 론스타로부터 (타협안을)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론스타 측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24일까지 진행되는 1차 심리가 끝나면 다음달 29일부터 열흘간 2차 심리가 열린다. 1차 심리에는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김석동·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전직 고위 관료들이 대거 증인으로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지만, 최악의 경우 세금으로 론스타에 최대 5조 원대를 물어줄 위험도 있다. 자칫 유사 소송이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 금융제도·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 심리 개시를 전하면서 “한국의 개방성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의 우려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외국 투자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 소송은 론스타가 2012년 11월 정부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과 불합리한 과세로 46억8000만 달러(약 5조10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봤다며 중재를 신청하며 시작됐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론스타가 HSBC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려다 무산된 게 한국 정부가 승인 결정을 지연시킨 때문인지, 론스타에 대한 8000억 원대의 세금 부과가 적절했는지, 소송을 제기한 론스타가 한국·벨기에 투자협정의 적용 대상이 되는가다. 이재민 서울대 교수(법학)는 “한·벨기에 협정문엔 세금부과·투자자 적격성에 대해 양쪽 다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만큼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34억원에 사서 2012년 1월 하나금융에 3조9571억원에 팔아 약 2조5000억원의 차익을 냈다. 그런 론스타가 소송을 낸 건 크게 두 가지 이유다. 먼저 외환은행을 HSBC에 팔았으면 더 많은 이익을 냈을 텐데 한국 정부가 매각을 지연시켜 2조원 가량을 더 벌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2007년 9월 HSBC에 외환은행을 5조9376억원에 팔기로 했었으나 이후 HSBC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무산됐다.

세금부과도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론스타는 펀드를 조성해 벨기에에 스타홀딩스를 세우고 2001년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를 인수했고 이후 LSF-KEB홀딩스를 세워 외환은행을 사들였다. 벨기에 자회사를 통해 극동건설·동양증권 빌딩 등도 사들였다. 이렇게 사들인 자산을 팔아 4조6000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냈다. 론스타는 세금을 내려하지 않았다. 한국·벨기에 투자보장협정(BIT)에 상대국에 투자할 경우 세금을 면제해 준다는 조건을 들어서다. 그런데 국세청이 8000억원대의 세금을 부과했으니 협정을 위반했다는 게 론스타 주장이다.

한국 정부 입장은 다르다. 당시 외환은행 헐값매각 소송,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매각 승인을 해줄 수 없었다는 논리다. 또 론스타 벨기에 법인은 실체 없는 페이퍼 컴퍼니로 실질적인 의사결정과 이익은 모회사인 론스타에 있는 만큼 과세는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론스타의 투자가 중재 신청 자격을 충족하는 적법한 투자인지도 큰 쟁점이다. 론스타는 처음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산업자본이기에 인수 자체가 적법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한·벨기에 투자협정에는 ‘투자를 자국의 법령에 따라 허용한다’는 규정(2조1항)이 있다. 이른바 ‘적법성 조항’이다. 한국 국내법을 준수하는 투자를 적법한 투자로 보는 것이다.

당시 은행법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가 아닌 법인이 일정한 적격성을 갖춘 경우 정부 승인을 얻어 은행 발행주식 총수의 10%이상을 취득할 수 있도록 규정했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에 따르면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위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할 때 론스타 자료에 의존해 LSF-KEB 홀딩스가 산업자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가 이후 적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으므로 투자협정 보호 대상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투자 적격성은 이번 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집중 공략해야 할 부분”이라며 “산업자본인 걸 감추고 외환은행을 인수한 건 도둑이 담을 넘어와 주인 물건을 가져간 격”이라고 했다. 도둑인 것이 분명해지면 이후 주인의 방해(승인 지연)로 물건을 제대로 가지고 나왔네 못 나왔네,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논리다.

노주희 변호사(민변 국제통상위)는 “매각 지연이나 과세 적절성을 따지는 심사에 들어가면 길고 긴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라며 “그 전에 론스타가 중재 신청자격을 가진 적법한 투자자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켜 소송을 각하하는 게 우리에겐 제일 좋다”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재판부가 ‘각하하겠다’고 하는 게 가장 깨끗하다”고 말했다.

ISD는 보통 심리 시작에서 최종 판정이 내려지기까지 1년 이상 걸린다. 당사자들이 합의하면 수 개월 내에 끝날 수도 있다. 이번 소송에선 양측간 타협의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만약 론스타쪽에서 합의하자는 제안이 와도 대한민국 공무원이 선뜻 받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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