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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불구속 수사 더 늘려 나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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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법원이 공개한 기준에 따르면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큰 경우 구속영장 발부 대상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 구속기소된 4423명 중 집행유예와 벌금.무죄 등으로 풀려난 피고인이 41%(1819명)에 이르렀음을 감안하면 그만큼 불구속 재판이 늘어나는 셈이다. 또 치열한 법정 다툼이 예상되거나 구속으로 인해 생계문제 등 개인의 불이익이 크다고 판단될 때 가급적 불구속하겠다는 것도 바람직하다.

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법원이 외부에 공개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법원마다 나름대로 영장 발부 기준이 있었으나 피의자의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등 매우 추상적 수준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담당 판사에 따라 구속 기준이 들쭉날쭉해 사법 불신을 키웠고, 전관예우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무죄 추정과 불구속 수사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 한 해 동안 전국 법원에 청구된 구속영장 10만9000여 건 중 발부된 건수는 86%인 9만4000여 건에 이르렀다. 이러니 불구속 수사 원칙은 법전 속에서 잠자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구속을 재판 출석을 담보하기 위한 신병확보 수단보다 범죄에 대한 응징으로 생각해온 국민의 법감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인신 구속은 개인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준다. 따라서 불구속 수사.재판은 더욱 늘려 나가야 한다. 다만 강력범.파렴치범이나 조직범죄 등은 예외다.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보호 못지않게 범죄로부터 사회의 안전을 지키고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 역시 소홀히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