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여신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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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경련회장단은 30일 기자회견에서 최근의 투자분위기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대기업에 대한 획일적 여신규제의 완화를 요구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들을 망라하는 전경련에서 기업환경이 이토록 어렵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은 예사 일이 아니다.
자유경제 체제아래서 기업은 주도적 경제주체로서 자유롭고 활발한 기업활동이 보장될 때만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될수 있다.
물론 대기업에 대한 여신규제를 하는 정책당국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정책부국의 그런 시책이 심한 무리를 빚는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과거의 경제정책에서 많이 경험했듯이 충분한 협의나 설득없이 독자적 권위로써 시책을 강행하려는 데서 인식의 격차가 벌어지고 결국 시행착오로 끝나고 마는 일이 많다.
아무리 동기가 좋아도 방법과 과정에서 무리가 생긴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수 없다. 경제분야에선 더욱 그렇다.
대기업에 대한 여신규제도 너무 현실을 무시한 획일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물론 우리의 경제문제중 국제수지의 개선과 인플레 심리의 발본이 시급한 과제이며 이를 위해서 총수요 관리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서 급격한 충격은 심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또 경제엔 경제논리가 우선되어야지 경제외적 기준을 적용해 억지로 끌고 가려는 것은 위험하다.
여신문제만 해도 그 기준은 경제논리대로 하면 두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그 금융이 국민경제 발전에 얼마나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출자금의 회수가능성이다.
문제는 대기업 여신을 그런 경제논리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도덕성이나 감상 논리의 기준에 맞추려는데 있다.
시각을 달리해 우리사회의 기업관에 문제가 있다.
기업은 어느 나라나 그 나라 국민경제의 가장 큰 원동력이자 추진력으로서 국민총생산의 증대에 기여하고, 고용창출을 통해 국민생활의 안정에 이바지한다. 대기업은 그런 면에서 보다 왕성하고, 보다 효율적인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대기업의 생산활동이 위축되면 그만큼 국민경제에 주는 마이너스 영향도 클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정부는 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낡은 시설을 보다 새롭고 보다 능율적인 시설로 대체해야하고, 부단한 기술혁신적 투자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수출을 증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노력과 대비 없이는 가까이는 5차 5개년계획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며, 선진국에 다가가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기업 여신규제도 장기적인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유도한다는 방향에서 마찰 없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느 싯점을 끊어 여신을 동결시키는 방법은 너무나도 경직하다.
대기업에 대한 여신이 편중되었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따져보고 그 원인을 고쳐 가는 것이 옳은 순서가 아닌가.
대기업 편중여신은 경제적·경제외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요인에 의한 것이 많으며 최근의 해외건설업체 정리에서 보는바와 같이 그런 정책유도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인과 관계를 무시한채 일정싯점에서 기계적으로 여신을 동결한다는 것은 전경련의 지적대로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투자분위기를 저해하는 사태까지 되어선 곤란하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선 기업의 활발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특히 요즘은 미래산업의 기반조성을 위한 첨단산업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합리화 투자가 절실하다.
이것은 대기업에 의해 주도될 수밖에 없 는것이 현실이다.
또 과거의 중화학이나 해외건설에서 보는바와 같이 금융을 금융의 논리에 의하지 않고 운용하는 것도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따라서 총수요 관리책도 금융산업의 자율성과 국민경제의 장기발전에 저해가 안되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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