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회만들고 영혼결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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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가장을 잃고 자식을 잃고 형제자매를 잃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충격과 아픔, 슬픔과 분노를 이기고 새삶을 엮는다.
보상비를 아들의 모교에 맡겨 장학회를 설립한 어머니가 있는가하면 가족의 글을 모아 책을 엮어 돌아간 피붙이의 이름을 기록했고 원통한 넋끼리 영혼이나마 짝지어 결혼식을 올려 사돈이 되어 오가는 유가족도 있었다.
비극을 이겨낸 유가족들의l년-. 그러나 아직 상처는 채 아물지 않았다.

<추모사업>
『그날 이후 틈나는대로 울어서 눈은 진무르고 찌부러졌어요. 막내 정훈이는 비행기 폭파장면을 그리고 또 그려서 스케치북을 4권이나 채웠구요. 큰 녀석은 바지 뒷주머니에 늘 아빠사진을 넣고 다닙니다』
김순택 서울대교수(당시 39세·교육학)의 부인 홍순정씨 (36·한국방송통신대교수·교육심리학)는 남편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못다한 교육의 정열』이라는 추모산문집을 엮었다.
두 아들이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와 부인 홍교수의글, 동료·선후배들이 고인과의 일화등을 추려 적은 글등 모두 40편이 실렸다. 주변 사람들만 돌려 읽을수 있도록 비매품 3백부 한정판으로 발간됐다.
이희령육군중령(37·대령 추서)의 어머니 김재숙씨(58·서울여의도동 광장아파트 1동130l호)는 장남인 이중령과 며느리 최경애씨(37) `손자손녀등 일가족4명의 보상금 1억6천만원 모두를 아들의 모교인 강원대학교에 희사해 「이희령·최경애부부 장학회」를 만들었다.
강원대에서 가장 기금이많은 이 장학회에서는 이번학기부터 한학기에 10명씩, 1인당 45만원을 지급할예정.
민정당의 권정달의원도 장녀 성희양 (당시 19세·중앙대 공예과1년)의 보상금 8천만원을 모두 중앙대에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영혼결혼>
영혼결혼을 한 승객 김범천(28)-여승무원 조 형심(23)부부의 유족들은 길흉사때마다 서로빼놓지 않고 찾아가 서로 위로하고 지낸다.
1주기인 31일 저녁에는 두집안 가족이 모두 모여 결혼식을 했던 금촌의 금륭사에서 함께 제사를 지내기로했다.
승무원끼리 결혼한 부사무장 김학윤(31)-서정숙(22·스튜어디스) 부부는 오는9월2일 가족들에 의해 강릉시공원 묘지에 합장된다. 이곳에는 시신대신 양복·한복1벌씩이 관에 넣어지며 김씨의 KAL동기생들이 마련한 부부합동묘비도 제막된다.

<유족 근황>
교체 승무원 김서일 기장의 부인 임개문씨(38·서울압구정동 현대아파트74동106호)는 아직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 막내인6살짜리 혜나양이 친구들에게『아빠는 미국에 가있다』고 자랑할때마다 가슴이 찢어져 아파트를 옮겼다. 특히 지난해10월에는 차남 성재군(8·리라국교1년)이 심장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바람에 임씨는 집안의 가장을 잃은 슬픔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천병인기장의 부인 김옥희씨(41)는 아들 범진군(10·청담국교5년), 딸 수현양(14·언북중2년)과 함께 지난해11월 논현동에서 압구정동 한양아파트로 이사했다. 범진군이 쇼크로 쓰러져 환경을 바꾸라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범진군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파일러트가 되는게 꿈.
한편 부산 대아호텔 김청륭사장(당시 44세)의 부인박선영씨(34)는 남편대신 호텔경영에 나섰다가 옥고까지 치렀다. 남편김씨가 숨진후 박씨가 회장에 취임했는데 지난1월 호텔에 불이나 40여명의 투숙객이 숨졌던 것. 금고1년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고 지난6윌 풀려난 박씨는 투숙객 보상비로 35억원을 지급하는 바람에 파산지경에 이르는 고통을 겪고 있다.

<보상>
2백69명의 희생자(내국인 승무원29명·승객81명등1백10명,외국인 1백59명)중 유가족에 대한 보상문제가 매듭지어진것은 30일현재 내국인 66명(승무원20명포함)과외국인 13명등 79명뿐. 3분의2를 넘는 1백90명이 미결이다.
합의를 한 유족들은 대한항공으로부터 ▲보상금 7만5천달러 ▲위로금 2만5천달러를 합한 1인당 10만달러(8천만원) 씩을 받았다.
미합의자 1백90명중▲1백12명 (내국인 29명포함)은 소송을 제기했으며 ▲78명 (내국인 15명)은 아직 사태관망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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