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버려야 "참다운 앎" 터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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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는 것이 힘이다(scientia est potentia)」라는 명언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베이컨」 (F·Bacon)은 철학뿐만 아니라 학문일반에 대해서도 심각한 자기반성을 제기한 최초의 근대인이었다. 그는 학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나태다. 학문을 너무 많이 장식으로 쓰는 것은 허식이다. 학문의 척도로만 판단하는 것은 학자적 기질이다…. 교활한 사람은 학문을 욕한다. 단순한 사람은 학문에 감탄한다. 영리한 사람은 학문을 이용한다. 학문은 학문의 용도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학문이외의 지혜, 즉 관찰에 의해서 얻어진 학문이상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철학이 바로 이러한 유형의 지혜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철학이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연한 사변과 공리공담, 그리고 과거의 굴레로부터 모름지기 벗어날 것을 그는 강조하였다. 「베이컨」 의 유명한『우상론』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베이컨」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네 가지의 우상(idola) 혹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우상 때문에 우리는 자연과 사회와 우리들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학문을 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로 제약을 받는다. 우선 가장 보편적인 우상은 「종족의 우상(idola tribus)이다.
이것은 인간이 인류라는 종족에 속해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편견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감각기관의 속임수나 감정의 개입 때문에 사물의 정체를 바로 볼 수가 없다. 더구나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도 고르지 못한 거울과 같아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주지 못한다. 이성은 현상을 잘못 판단하기가 일쑤이며 이것을 다시 일반화하여 추상적인 관념속으로 구겨 넣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지닐 수 밖에 없는 이러한 편견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극단적으로 발전할 때 「베이컨」은 그것을 「동굴의 우상(idola specus)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고유한 동굴 때문에 자연의 빛을 굴절시키거나 혹은 변색시킨다. 이것은 본성이나 교육 혹은 심신의 기분 내지 상태에 따라 형성된 각자의 성격이다. 어떤 마음은 날 때부터 분석적이어서 도처에서 차이점을 보고 어떤 마음은 날 때부터 종합적이어서 도처에서 유사점을 본다…. 또 어떤 성격은 낡은 것을 한없이 찬미하고 어떤 성향은 새로운 것만 열심히 받아들인다. 다만 소수의 인간이 공정하게 중용을 지켜 고대인이 정확하게 수렴한 것을 파괴하지도 않고 근대인의 정당한 혁신을 멸시하지도 않는다』여기서 「베이컨」은 각자의 동굴에서 헤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온고이지신의 지혜와 중용의 덕을 아울러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 상호간의 교제와 연합에 의해 형성되는 소위 「시장의 우상(idola fori)이다.여기서 특히 주의해야 될 것은 장터에서처럼 함부로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야기되는 오해나 몰이해의 현상이다. 예를 들어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이름을 불여서 마치 그것이 그 어느 것보다도 확실하고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경우에 우리는 시장의 우상을 갖게되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사유를 표현하고 사유는 존재에 대한 사유이므로 사물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가지려면 언어를 갈고 닦아야한다는 것이 「베이컨」의 주장이었다.
「베이컨」이 지적하는 마지막 편견은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이다. 그는 철학 체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상이나 이념들을 무대상연을 위해 꾸며진 연극의 각본과 비교하였으며 우리는 사실보다 더 정연하고 우아해 보이는 이 각본들에 쉽게 현혹된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무대를 위해 꾸며진 학문의 각본을 믿지말고 사물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파악해야 진정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가르쳤던 것이다.
「베이컨」 의 우상론에 의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상이나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는 자기의 동굴속에 갇혀있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진정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채 어느 특정한 사상이나 이념을 추종하며 살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참다운 앎은 이러한 우상에서 벗어날 때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우상을 파괴하고 편견에서 헤어난 앎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힘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앎은 우리에게 우주의 운행과 역사의 진로를 있는 그대로 밝혀주므로 앞날에 대한 예견을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불운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이컨」의 주장이 옳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앎(scientia)이나 힘(potentia)을 갖출 수가 없다는 사실을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편견에서 헤어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우상을 생래의 환부처럼 받아들이며 동시에 다른 사람의 편견도 내가 나의 우상을 소중히 여기듯 따뜻한 손길로 감쌀 수 있는 아량을 먼저 터득해야 할 입장에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앎에 한 걸음 다가가는 진정한 의미의「힘」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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