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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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애엄마! 요즈음 친정모친이 통 오시지 않나 보군.』약을 사러오신 옆집 할머니께서 친정어머님의 안부를 여쭈어보신다.
『녜. 몸이 좀 편찮으셔서…』하고 대답하는 내게 『많이 아프신가 보군. 팔십 노인치곤 꽤나 정정하시던 분이, 너 나 할 것 없이 늙으면 몸이 말을 들어야지, 쯧쯧.』
문득 내 어머님외 연세가 어느덧 여든을 넘어섰구나 생각하니 일순의 뉘우침과 자각같은 것이 찡하니 가슴으로 와 닿는 것이 아닌가. 작년까지만 해도 나이 40이 가까워 오는 이 막내딸의 사는 모습을 안쓰러워하시며 고추장·막장, 심지어 김장까지도 손수 담가주시던 어머니다. 언제 누가봐도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새로 당신의 고달픔과 언짷음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분이기도 했다.
얼마전 일이다.
국민학교 3학년 아들녀석이 학교에서『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 이름을 적어라』는 선생님의 숙제에 서슴없이「구일순」-당신의 이름 석자를 맨 첫째로 적었다니!
처음엔 나도 놀랐었다.
그 아이가 나서 여지껏 자랄때지 본 것은 늘『착하거라』하시며 토닥거려 주시면 할머니의 다정한 모습이 위인전에 나오는 그 누구보다도 가슴깊은 곳 또렷이 새겨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도 방학을 했으니 내일은 함께 어머님을 뵈러 가야겠다. 그래서 며칠동안이나마 고적하고 적막한 집안에 아이들의 웃음과 숨결로 꺼질 듯 남아있는 여생의 불씨를 생의 활기로 되찾을 수 있도록 해드림이 남은 효성일 것 같다.
『참!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지!』얼른 전복을 사다 전복죽이라도 쑤어다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장으로 내닫는 내 발길은 바쁘기만 하다.
(부산시양정1동11통3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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