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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무원연금법 불발에 왜 민생 법안이 희생양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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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야가 어제 ‘원포인트 국회’를 열었지만 달랑 법안 3개만 통과시키고 도로 문을 닫았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를 연계하는 것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다른 50여 개의 민생 법안을 희생시킨 것이다. 당초 협상 대상도 아니었던 국민연금을 연계시킨 것도 황당한데 이젠 아무 관련 없는 다른 민생 법안들까지 공무원연금과 연계시킨 꼴이니, 이러고도 국회가 민생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본회의 문턱에서 발목이 잡힌 법안들은 학자금을 빌린 대학생들이 원리금을 손쉽게 갚을 수 있도록 하는 취업후학자금상환특별법 개정안, 담뱃갑에 흡연 경고그림을 의무적으로 넣도록 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 협의를 거쳤거나 법사위를 통과한 비쟁점 법안들이다. 그런데도 공무원연금법 처리 불발의 ‘볼모’ 신세가 돼버렸다.

 이제 국회는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도 작동하지 않는 ‘불능 국회’란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더욱이 야당이 3건의 안건 처리에 동의하면서 새누리당에 ‘그 정도라도 고마운 줄 알라’는 취지로 말했다니 놀랍고도 어처구니가 없다. 국회가 법안을 처리하는 건 본연의 임무이자 의무다. 민생 법안을 흥정과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고,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 착각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사고의 함정에 빠져 있으니 툭하면 국회 보이콧이요, 법안 발목 잡기가 습관처럼 반복되는 게 아닌가.

 어제 본회의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선 새로 출범한 이종걸 원내대표 체제가 ‘첫선’을 보인 시험대이기도 했다. 이 원내대표는 과거 독설과 막말 발언으로 물의를 빚으며 강경 이미지가 부각됐다. 그런 만큼 이번 공무원연금법 처리가 이미지를 바꿀 좋은 기회였는데도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에 반대하는 당내 온건파의 요구도 묵살했다. 그제 비공개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선 “이대로 가다간 전투에선 이길지 몰라도 전쟁에선 진다”(추미애 최고위원)거나 “우리가 바깥 여론을 너무 모른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높이는 걸 국민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김춘진 보건복지위원장)며 궤도 수정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야당이 계속 앞뒤가 꽉 막힌 강경 일변도로 나간다면 어떻게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출 것이며, 다가올 총선과 대선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문재인 대표가 강조하는 ‘경제 정당’ ‘민생 정당’도 한갓 쇼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국회가 이 지경이면 박근혜 대통령이라도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유체이탈’ 화법을 접고 국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사태를 꼬이게 한 데는 청와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염치없는 일” “시한폭탄이 터질 수밖에 없다”며 공무원연금 개혁을 압박만 할 게 아니라 야당을 설득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