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의 폭격실언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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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레이건」 미대통령은 지난해 남미를 순방 중 브라질에 도착했을 때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 나라 정부 및 사회 저명인사들이 초청된 연회석상에서 축배를 들면서 『볼리비아 국민을 위하여-』라고 서두를 꺼냈던 것이다.
금방 자기 실수를 알아차리고 그는 『볼리비아는 나의 다음 기착지였군…』이라고 웃어넘겼다. 그러나 참석자들이 같이 따라 웃지 않은 건 물론이다. 「레이건」대통령은 이번에 그보다 더 큰 실언을 해서 말썽이 되고있다. 그는 지난 10일 월례 라디오 방송용 녹음을 하기직전 마이크 시험을 하면서 『국민여러분, 본인은 방금 소련을 영원히 추방하는 법에 서명했음을 기쁘게 발표합니다. 폭격은 5분 안에 시작됩니다』라고 말했다.
핵폭탄으로 소련을 쓸어버리겠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는 이 말이 전해지자 소련은 물론 미국의 핵정책에 깊은 의심을 품고있는 서구의 미국 우방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리고 워싱턴포스트지는 15일 「레이건 폭탄」씨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싣고 대통령의 경망스러움을 질책했다.
미국의 유명한 시사만화가들도 「레이건」의 실언을 풍자하는 만화를 그려 보도하고 있다. 한 만화는 「레이건」대통령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단추를 누르면서도 낄낄 웃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유럽에서는 「레이건」의 실언을 대개 1면 기사로 크게 다루었다. 특히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해설까지 곁들였다.
르몽드지는 「레이건」대통령의 폭격 발언」이 『억제되었다가 튀어나온 평소 소망인지 어떤지 심리학자가 분석해봐야 될 것』이라고 극언했고, 서독의 사민당계 통신사는 「레이건」을 『무책임한 늙은이』라고 비난했으며 녹색당은 『악취미의 농담이 정상적인 사람을 소름끼치게 했다』고 평했다.
그런 반응은 서구인들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퍼싱과 크루즈미사일의 유럽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핵반대론자들은 미소간에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 첫 불바다가 될 대상지는 서구라고 늘 주장해왔고 게다가 「레이건」행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핵의 실전화」문제가 공공연하게 논의되어왔기 때문이다.
백악관측은 녹음시험중의 발언은 오프 더 레코드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이 실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있지만 「먼데일」민주당대통령후보도 「레이건」대통령의 군사우월주의를 공박할 자료를 하나 더 얻은 셈이다.
「레이건」대통령은 나이 탓인지 취임 후 무수한 실언, 과장 또는 사실이 아닌 말을 한 기록이 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마크·그린」과 「게일·메콜」이라는 두 저술가가 『「레이건」의 실언록』이라는 1백25페이지짜리 책까지 내었다.
그리고 그 책 뒤에는 『독자가 앞으로 발견할 「레이건」의 실언을 적어 넣으시오』라고 한 여백을 2페이지 첨가해 놓고있다. 적어도 이 저술가들의 예상은 이번에 적중한 셈이다.
이번 실언도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겠지만 워싱턴포스트사설은 하나의 중대한 충고를 하고있다. 『다른 사람은 핵폭탄에 대해 농담을 할 수 있지만 적어도 핵발사 단추와 암호를 손에 쥐고 있는 대통령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워싱턴특파원>장두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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