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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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LA올림픽은 그 동안 많은 인간 드라머를 보여주었다. 인간정신의 무한한 성취는 승부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 장쾌한 숙사시였다.
승부의 장에 나서기까지 그 많은 선수들의 피나는 고통과 눈물의 인내와 역전의 노고를 생각하면 누구나 삶의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가까이 금 6, 은 6, 동 7의 메달리스트들을 보며 또 다른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의 생활 속에 비친 인간환경이 그것이다.
하나같이 선수들은 수수한 집안 출신이었다. 명문대가가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나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삶의 모습이었다. 부모들의 얼굴엔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 엿보이고, 자식들에 대한 마음은 한곁 같이 가슴에 사무치고 애틋해 보였다. 그것은 순간의 촌극일수 없다.
선수들도 어쩌면 약속이나 한 듯 부모에 대한 마음이 그리 따뜻한가. 『어무이…』, 『아버지』, 『힝이가?』(형이가), 『누나야!』 『삼촌입니꺼?』…. 모두가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이제 됐다!』, 『그 동안 고생 많이 했습니다』-.
차라리 이것은 절규였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행복한때가 아니다. 인간은 고통과 절망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가 위대한 작품을 쓴 것은 바로 절망과 고통이 이웃해 있을 때였다. 「베토벤」은 귀가 멀고 나서 『장엄미사곡』과 『환희의 교향곡 제9번』을 작곡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선고를 받고 시베리아유형을 겪고 나서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사마천이 성적인 불구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사기』와 같은 역저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의 우리 나라 메달리스트들에겐 「헝그리」(배고픔) 정신이 있었다. 그들은 역경과 불우를 탄식과 백조로 맞기보다는 그것과 싸워 이겼다. 이들에겐 불행이 싸워 이겨야할 하나의 호적수였다.
메달과 함께 이들에게 돌아가는 물질적 혜택과 명예와 안락은 당연한 보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인간풍경들을 바라보며 또 다른 감동과 위안을 받는다. 아직도 우리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은 누가 보든 말든 저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보다 더 큰 감동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족들이 서로 믿고 서로 사랑하며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LA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은 우연히도 그런 보통 사람들의 생활단면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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