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 최고의 날 외국인들까지 "한국만세"|LA현장 감격의 순간과 주역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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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스포츠의「황금의 목요일」이었다. 1984년8월9일(현지시간) 금메달 1개를 포함해 무려 5개의 메달을 따낸 이날은 우리 스포츠사상 최고의 날이었다.
그 메달현장의 감격적인 순간과 메달 주역들을 다시 본다.

<장관도 더덩실 춤춰|핸드볼>
9일밤 LA시내에서 동남쪽으로 1백여리 떨어진 풀러턴 남가주 주립대학의 운동장엔 한국열기로 가득했다. 은메달을 받는 시상식때에는 교민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이영호 체육부장관도, 유병현 주미대사도, 김종하 핸드볼협회장도 교민들과 어울려 춤을 추었다.
누가 먼저인지는 몰라도『아! 대한민국』의 합창소리가 어둠이 깃든 운동장을 진동시켰다. 운동장을 메운 3천여명의 관중들은 서독과의 경기에서 단신의 한국 여자선수들이 봉여준 그 날쌘 기량에 열광했다. 신인 윤계향이 전반 10분후 정순복을 대신해 키퍼를 하면서 10골의 노마크 공격을 막자 교민들은 물론 일반 관중들의 환성은 더 높았다.
우리가 뽑아낸 26골중에서 16골을 따낸 골게터 윤승순이 시상대에서 제일 눈물을 많이 흘렸다. 윤은 LA에 오기 20일전까지도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윤은 신장이 나쁜데다 허리수술을 받았었다. 주치의는 윤의 출전을 만류했고 그래서 체육회는 윤을 선수명단에서 빼야 겠다고 생각했다. 윤은 이 소식에 화를 벌컥내며 『쓰러져도 올림픽 경기장에서 쓰러지겠다. 나는 절대로 선수단에서 안 빠지겠다』고 했다. 그래서 수상대위에서 윤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김종하회장은 전반에 10-9로 지자 초조한 표정으로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가 승세가 굳어진 경기종료 5분전에 밝은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한국이 역전승하자 미국관중의 함성과 박수가 더 요란했다.
격전을 치른 다음날인 10일 아침 한국 핸드볼의 여걸들은 디즈니랜드를 관광했다. 생명을 바쳐 싸운 격전을 치른 여걸이 아니라 여성으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잠자리서도 눈물이…|유도>
한국유도 80년 사상 최대경사를 맞은 9일 유도경기가 열린 캘리포니아주립 LA대학체육관의 관중석에 자리잡은 5백여 응원단의 『대한민국만세』『유도만세』소리가 전지를 진동시켰다. 안병근때에 이어 두번째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태극기가 오르는 순간 울먹이며 애국가를 합창, 절정을 이루었다.
금메달리스트 하형주는 일본 선수와의 경기중 어깨·무릎을 가볍게 다쳐 금메달을 딴 9일밤엔 선수촌 동료들의 축하를 받은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금메달의 흥분 때문인지 눈만 감으면 깊은잠에 떨어지던 것과는 달리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부자리에서도 감격에 겨워 절로 눈물이 나오더라고 했다.
하는 3회전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일본의「미하라·마사또」(삼원정인)를 들어메치기로 통쾌한 한판승을 거둔 것이 우리선수단의 일본 콤플랙스에 걸려있는 다른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기후 배종렬 유도협회장을 비롯한 10여명의 국내 유도인과 20여명의 해외 지도자들은 이날밤 단합모임을 가졌다.
김동석 유도회부회장·송상수 전무·이상찬 유도대학장·박길정 미국유도회 심의위원·민경활 미국버클리대교수·최병호 재미대한유도대 동창회장 등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유도인들은『여기에서 만족하지 말고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한다』『우수 유망주와 신인들을 발굴, 많은 해외전지 훈련으로 전력을 강화하자』는 얘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배회장은 앞으로 더많은 지원을 약속했다.
그동안 경기장을 지켰던 배회장은『내가 자리를 지키면 지고 비우면 이겨 하군의 경기 땐 아예 밖에나가 있었더니 금이 되더라』며 껄껄 웃었다.

<허탈감 떨치고 생기|복싱>
당초 메달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던 허영모·김광선·문성길이 l회전 또는 메달권 진입 직전에 모두 탈락, 허탈감에 빠졌던 복싱팀은 9일 예상밖의 신준섭 (75kg급) 안영수(67kg급)가 은메달을 확보, 금에 도전함으로써 활기를 되찾았다. 『한국복싱의 사활(사활)은 11일의 결승전에서 결판난다. 링 위에서 죽을 각오로 금에 도전하자』
9일밤 금메달을 딴 유도팀, 세계2위를 차지한 여자 핸드볼팀이 축제분위기에 술렁일때 복싱팀은 밤을 새워가며 작전구상에 여념이 없었다.
김승연회장의 입술은 새까맣게 타있었고 오고인부회장·김성은감독·이한성코치·이경재섭외이사 등 임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초췌한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았다.
초조한 마음에 체육관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꺼내 물었다 복도로 쫓겨나기도 했던 김회장은『유망주들의 초반 탈락에다 불공정한 판정에 의한 잇단 제소 등 2중,3중의 불운이 한국팀에 겹쳐 힘들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본사올림픽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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