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갈등 타협점 찾을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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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경제의 실적이 요즈음처럼 좋은 모습을 보인적이없고 계속 나아질 전망인데도 경제의 운영과 정책에 불만이 있다면 더이상 무엇을 할수 있겠느냐는 정책당국의 하소연을 자주 듣게된다. 통계지표는 분명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9%가 넘는 높은 성장속에서도 물가는 제자리의 안정을 유지하는가하면 경상수지의 적자도 그규모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있다.
이처럼 경제는 잘되어 가고 있다고하나 실제로 경제의 성과를-지극히 속된 표현을 빌면-피부로 느끼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은것같다.
전국을 들끓게했던 어느공직자의 축재가 불을 댕긴 부동산투기에 대한 혐오와 분노는 이제 부동산소유 그자체를 부인하려는 움직임으로 치닫고 있다.
범위나 규모도 분명치않은 향락업은 부유층의 퇴폐적인 생활의 산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과자부스러기로부터 원자로에 이르기까지 모든곳에 손을 뻗치고 있는 대기업, 그리고 이들 손에 집중된 경제력은 우려와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과 흥청대는 도시로 비유되는 도농간의 격차는 방향감각이 분명치않은 분노를 분출시키고 있다. 자금의 융통을 원활히하기 위해만든 양도성예금이 빈자를 외면한 처사로 심한 비난을 받고있다.
최근에 크게 부각되기 시작한 여러 경제사회문제의 저변에서 우리는 한가지 공통되는 불만을 찾아볼수 있는데 그것은 소득과 부분배의 불평등, 그러고 좀체로 좁혀지지않는 빈부의 격차가 배양하고있는 좌절감인 것같다.
소득과 부분배의 상대적인 불균형은 언제나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반시민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늘 걱정해오던 인플레나 실업의 문제가 완화됨에 따라 자연히 형평의 문제가 실제 이상으로 과장된 것으로, 아니면 이곳저곳에서 쌓인 불만이 삐끔 열린 경제의 문으로 쏟아져 나오는것으로 넘겨버릴수도 있다.
분배상의 불평등은 우리가 개선해야할 정책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자면 이문제는 여론화되어야 한다. 다만 비등하는 여론을 건설적인 개선으로 수렴할수 있을 것인지는 분명치 않은데 이점에 정책당국은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분배의 개선은 다른 목표와는 달리 경제적인 차원에서 해결될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우리가 지향하는 소득분배 형평의 수준은 설정하기 어려운 것이며 둘째는 설사 수준을 세울수 있다 하더라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을 운영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데있다.
물가의 안정이나 성장등 거시적인 목표와는 달리 소득분배의 형평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가치관에 따라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받아 들일수있는 분명한 목표란 있을수 없다.
분배형평의 이상적인 수준에 관한한 우리는 소득점유율이나 집중도등 별로 정확하지도 않은 지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수많은 이상적 수준에서 그하나를 선택해야한다.
그 이유는 물론 가치관의 차이에도 있겠으나 불평등의 개선은 내것을 혹은 내게 올것을 남에게 주어야하는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돈을 마구 찍어내거나 외국빚으로 모든 계층의 욕구를 들어주지 않는한 형평의목표수준은-다시 속된 표현용 빌어-소득계층간의 양보와 이해에 바탕을 둔 타협으로 선택될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러한 이해를 달리하는 계층간의 대립속의 타협과 협상의 역사도, 전통도없으며 타협을 유도할수있는제도도 갖추고 있지않다.
결국 모든 계층은 정부가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선택하는 이상 수준은 계층간의 타협에서 출발하지 않았으므로 많은 계층의, 때로는 모든계층의 공격을 받게된다. 분배에 관한한 무엇을 하든 정부는 욕을 먹기 쉽고 인기를 잃기십상이어서 뚜렷한 신념이나 정책의지가 뒷받침하지 않는한 개선정책은 쉽게 후퇴하거나 무너지고 말게 된다.
더구나 많은 사람은 돈많은 계층이 정부의 정책결정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통념은 약자와 빈자를 도와야한다는 일반논과 합세하여 여론의 대류를 이룬다. 기준에대한 불만, 일관성 없는 정책, 있는 자의 득세와 약자를 대변해야하는 명분이 뒤섞이다보면 분배에 대한 불만은 과격한 주장과 요구로 발전한다.
정부는 각계층의 타협점을 찾아보는 정책의 운영에 경험을 쌓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에 결국은 흑이나 백의 반응을 보인다. 하루아침에 향락업은 사회악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현행세제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부동산투기로 떼돈은 커녕 은행이자도 제대로 못벌게되어있는데도 왜 세제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지 묻기전에 우리는 자본주의의 토대를 뒤흔드는 국유화·공유화를 들고 나온다.
경제력의 집중을 해결할 순리의 방안도 있으련만 많은 사람은 화끈한 물리적인 처방을 기다리고 있는것 같다.
나는 분배의 불평등이 왜이처럼 급작스레 과격한 사회문제로 부상되고 있는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다. 선진의 성숙된 사회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하나는 있는자와 없는자가 서로 대립과 갈등의 와중속에서도 공존의 타협점을 찾아가면서 두루뭉수리로 살아가는 생활이 관습으로 쌓이고 전통으로 이어져 분배에 대한 이해를 무리없이 삭혀줄수 있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필자약력>
▲1939년충북보은태생 ▲서울대상대경제과졸 ▲미미네소타주립대대학원졸(경제학박사) ▲국제통화기금 경제조사관역임

<저서>
『한국의 금융발전』 『한국경제와 금융산업』 (공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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