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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해와 무고 풍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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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이른바 음해성 투서와 악성 무고· 고발· 고소등이 우리사회 구석구석에서 난무하고 있는 현상은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검찰이 무더기로 적발한 「음해」사범의 대부분이 기업이나 개인의 약점과 치부를 이용했거나 터무니없는 사실을 날조, 협박하거나 공갈의 도구로 삼았다. 또 범인중에는 미성년 남녀가 포함돼 있어 사회교육적인 면에서도 적지 않은 우려를 자아내고있다.
더구나 악성 고발이나 투서의 동기가 건전한 시민정신에 입각해 공(국이나 사회정의 구현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금품을 뜯거나」 해고에 대한 「보복」 등 사적 욕망추구에 뜻을 두었다는데 문제가 있다.
고금 동서를 통해 어느 사회에서나 투서는 있게 마련이고 일부 국가에서는 부정척결의 수단으로 투서를 장려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투서는 목적이나 동기, 수단에 있어 정당성과 순수성을 요구하고 있다.
고발성 투서가 지니는 공익성과 윤리성, 공명성이 밑받침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흡결이 있을 경우 그 행위는 엄한 사법적 처단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 동기가 순수하지 않거나 공리추구가 전제되지 않고 사적 동기나 사사로운 집단의 이익을 의할 때는 도덕적 비난과 함께 가벌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 수단이나 방법도 저열하거나 비굴하지 않아야 한다.
『등뒤에서 총을 쏘는 식』 이거나『고자질』에 해당하는 투서는 음해성이라는 지탄을 받게 마련이고「익명의 투서」 가 문제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사회에서의 경쟁의 「룰」은 정정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페어플레이」 원칙이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신성한 의미의 고발이라도 빛을 잃으며 시험이나 시합때의 부정행위나 속임수처럼 악덕시된다.
음해 투서나 악성 고발은 당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상을 주고 그것이 만연되면 페해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병든 사회와 불신사회를 낳게 된다.
신뢰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불· 서독등이 무고행위에 대해 유독 엄벌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형사판결 때 당한 사람의 명예회복을 위해 매스컴에 공시토록 반사판결까지 병행해 내리는 부수처분을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미연방법원이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경찰국장인 「설리번」 의 명예를 손상한 민사소송사건에서 명예훼손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 뉴욕타임즈사에 승소판결을 내린 것도 동기의 공익성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이판결의 배경에는 물론 자유민주국가에서의 언론기관의 공적 기능도 참작이 되었지만 흑인폭동사건에서 다수시민의 입장을 실어준 공익성과 신문에 게재한 행위의 공명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투서는 동기나 수단, 방법의 저열성 여부에 따라 판이한 의미를 낳는다. 음해성 투서나 악성 고발은 동기가 무시되고 절차와 방법이 경시되는 대신 결과나 목적달성만이 ,우대되거나 평가받는 풍조가 만연될때 횡행하게 마련이다. 또 당국이 부정을 눈감아주거나 수사력이 제구실을 못할 때, 혹은 언로가 막혀 뜬소문이 난무할때 투서의 악순환이 빚어지기도 한다.
우리사회를 지탱하고 추구해야할 윤리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신의사회이다.
계약사회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에 상호간의 신뢰가 없으면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는 이룩할 수 없고 화합도 이뤄지기 어렵다.
불신을 조장하는 투서· 고발의 근절노력과 더불어 이를 낳는 배경의 청소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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