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시한 못 박아 압박 … 합의안 나오자 “내용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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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 개혁 논의의 출발점은 지난해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대국민 담화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을 최우선으로 해서 군인·사학연금 등 3개 공적연금 개혁을 국정 과제로 제시했고, 새누리당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해 4월 경제혁신특위(위원장 이한구 의원)를 구성했다. 하지만 막상 정부와 새누리당은 공무원들의 반발을 의식해 서로 먼저 안을 내놓으라며 뜸을 들였다. 결국 새누리당 자체 개혁안이 먼저 나왔다. 지난해 9월 26일이었다. 당 경제혁신특위 공적연금개혁분과에서 마련한 고위직으로 갈수록 연금보험료를 더 많이 내고 연금은 적게 받도록 하는 ‘하후상박(下厚上薄)’안이 이날 본지 보도로 처음 공개됐다.

 지난해 10월 19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청와대는 개혁안의 연내 처리를 새누리당에 강력히 요구했다. 이어 10월 28일 새누리당은 의원총회에서 자체 마련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확정하고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했다.

 관건은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는 일이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에 자체 개혁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새정치연합은 이해당사자인 공무원노조를 협상 테이블에 앉혀야 한다고 맞서면서 대치상태가 지속됐다. 결국 지난해 12월 29일 구성된 ‘국민대타협기구’에 공무원단체 등이 참여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그러나 개혁 대상인 이해당사자가 실무기구에 포함돼 발생한 문제도 컸다.

 물론 인사혁신처가 제시한 기초안에 대해 공무원노조 측이 반발하면서 대타협기구는 초반 파행을 겪었다. 그러다 지난 3월 26일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가 절충안을 내놓아 분위기가 반전됐다. 공무원이 내는 기여율(보험료율)을 10%, 연금 수령액(재직기간 평균 월급여액X지급률X재직연수)의 지급률을 1.65%로 하는 방안을 제안한 내용이었다.

 이를 토대로 여야는 실무기구까지 만들어가며 지난 2일 기여율 9%, 지급률 1.7%의 타협안을 도출했다. 새누리당이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던 ‘김용하안’보다는 후퇴한 내용이지만 여권에선 “차선 정도는 된다”는 평가가 나왔다. 공무원연금 협상 자체는 합의가 끝났지만 야당이 합의 부대조건으로 공적연금 강화 방안(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 인상)을 요구하면서 일이 꼬였다.

 지난 2일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서명한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엔 “실무기구의 공적연금 강화에 대한 합의문을 존중해 사회적기구를 구성한다”고 돼 있었다. 실무기구에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올리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다만 새누리당은 실무기구 합의안은 ‘존중’하되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실행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었다.

 청와대가 소득대체율 인상안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새누리당은 “야당에 명분을 세워주기 위한 형식적 문구”라는 식으로 설득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여야가 이미 실무기구안을 100% 수용하는 쪽으로 서명한 것이라고 봤다. 결국 지난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소득대체율 50%’를 명문화하는 문제로 인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국회 통과 직전에 급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여권 내에선 “박 대통령이 그동안 수시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압박하면서 무리하게 협상시한을 정해 ‘부실 합의’를 만들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여야 협상 내용을 알지도 못했고, 올바른 방향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제3자적 관점’에서의 입장이 나와 ‘유체이탈’ 화법이란 말을 듣고 있다.

 문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2007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60%에서 2028년까지 40%로 낮추는 개혁안을 통과시켰으나 다시 50%로 올리려는 것도 앞뒤 안 맞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 개혁을 주도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마저 “굉장히 많은 돈이 든다”며 우려를 표시했을 정도다.

 ◆공무원연금 합의안 부정적 여론 우세=한국갤럽이 지난 5~6일 전국 성인 807명을 상대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42%가 ‘반대’, 31%가 ‘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 수령액을 늘리자”는 답변은 32%였지만 “보험료를 더 내지 말고 현행 수준을 유지하자”는 답변은 54%에 달했다.

김경희·위문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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