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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누구 보라는 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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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심서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던 대학 러시아문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질문했습니다. “이 화법은 독백일까요, 대화일까요 ” 음침한 말투로 서구 계몽주의를 조롱하는 화자는 누가 듣건말건 떠드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꼭 들어주길 바라며 말하는 듯도 합니다. 문득 그 질문이 생각난 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다보면 ‘누구 들으라는 거지?’ 싶을 때가 있어서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일요일인 지난 3일 오후 한양도성길을 산책하다가 사진을 스무 장 넘게 찍어 자신의 트위터(@wonsoonpark)에 올렸습니다. ‘못이 튀어나왔다’ ‘화장실이 너무 많다’ ‘안내판이 요란하다’ 같은 지적과 함께였습니다. 서울시 공무원들이 보라는 거죠.

 논란은 여기서 생겼습니다. ‘휴일에도 실시간 소통하는 시장님’을 반긴 이들도 있었지만 ‘휴일에 SNS로 업무 지시하는 상사’에 거부감을 느낀 이들도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SNS로 공개 지시하면 조직원의 휴일이 휴일이겠냐는 거죠. 만약 박 시장이 ‘산책 중에 이런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일 담당 공무원에게 얘기하겠습니다’라고 시민에게 말하는 식으로 트윗했다면 어땠을까요. 같은 내용이라도 느낌이 달랐을 겁니다.

 공직자나 공공기관의 SNS 사용은 그래서 까다롭습니다. 독백인지 대화인지 화법을 잘 선택해야 하죠. 청와대 공식 트위터(@bluehousekorea) 역시 그 점이 아쉽습니다. ‘6개월 행정인턴 모집’ 같은 글이 청와대 공식 계정으로 종종 올라오니 직급 낮은 이가 트위터를 운영하는구나, 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되죠. 지난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의 피습 때도 사건 발생 3시간이 지나도록 청와대 트위터는 박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순방 일정을 중계할 뿐이었습니다.

 기이한 화법의 최고봉은 지난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트위터입니다. 공식 계정의 첫번째 트윗이 “온라인 대변인에 내정된 ○○○입니다”였습니다. ‘청와대를 홍보하는 나’를 홍보해 버린 거죠.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