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5)유진오·이효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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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춘원 이야기는 앞으로 많이 나올 것이므로 이만큼 하고 다음으로학교 선배인 유진오·이효석이야기를 할까 한다.
나는 22년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지금의 경기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내가 1학년때에 유진오는 4학년이었고, 이효석은 3학년이었다.
나하고 같은 반에는 박태원과 정인택이 있었다.
유진오는 제일고보때부터 수재로 유명했다.
내가 3학년때 가등이란 일본인 교장이 그해에 처음 개교한 경성제국대학 예과의 개교식에 갔다와서, 우리들에게 『예과 개교식에 우리학교 졸업생인 유진오군이 수석합격자로 입학생을 대표해서 훌륭한 답사를 하였는데,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해서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고 하며 『너희들도 유진오 같은 수재를 본받아 공부를 잘 해 학교 이름을 빛내주기 바란다』 고 말했다.
내가 예과에 들어갔을 때 유진오는 대학 법과 2학년이었고, 이효석은 대학 영문과 1학년이어서 만날 기회가 없었다.
29년 내가 학부에 올라갔을때 유진오는 학부를 졸업하고「하나무라」(화촌) 교수의 형법연구실 조수(조수-지금의 조교) 로 있었고, 이효석은 영문과3학년 학생이었다.
그때 학제가 어땠는고 하니, 일본의 고등학교는 중학교 4학년을 수료하면 입학시험을 볼수 있게 되어 있어서 공부 잘 하는 학생은 4학년을 마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3년동안 공부하고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경성제국대학 예과는 중학교 5년을 졸업해야 입학시험을 볼수 있게 되었고, 그 대신 예과의 수업 연한이 2년으로 되어있었다.
일본의 대학은 각지방의 고등학교 졸업생을 시험을 보여서 뽑게 되어있었지만, 예과라는 것은 그 대학에 진학할학생들에개 고등학교 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만든 것이므로 시험없이 그 대학에 진학하도록 되어있었다.
이것이 예과와 고등학교가 다른 점으로 고등학교는 3년동안 공부한 뒤에, 또다시 지원하는 대학에 가서 입학시험을 보아야 하지만, 예과는 그 대학에 저절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때의 대학은 요새같이 학점제가 아니라 학과제여서, 3년동안에 스물네과목을 통과하면 학사가 되어 졸업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문과의 경우는 3년동안에 스물네과목을 시험보아 급제하고, 그외에 전공과목의 학위논문을 써내서통과해야 비로소 문학사가 되어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이 학위논문이란 것은 문과학생에게만 있는 것이어서 법과학생은 스물네과목만 통과하면 법학사가 되어 졸업하게 된다.
문과에서는 졸업논문의 비중이 퍽 커서 스물네과목과 똑같이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문과 학생들은 1학년, 2학년때에 스물네과목을 대부분 따놓고, 3학년에 올라가서는 논문을 쓰는데전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이때문에 내가 학부에 올라갔을 때 3학년이었던 이효석은 학교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논문을 쓰고 있는듯 싶었다.
다만 1주일에 한번 금요일 오후1시부터 시작되는 「플라이스」교수의 근대영시 강독시간에만 학교에 나타났다.
그는 시간에 대어 교실에 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플라이스」교수가 교실에 들어와서 강의를 시작할 때까지도 자태를 나타내지 않다가 강의도중에 교수가 『미스터리·꼬·세끼(이효석의 일본말발음)!』하고 지명할 때에 돌아다 보면 어느 틈에 뒷문으로 들어왔는지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는 것어 보였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학생 제복을 입었는데, 이효석 혼자만이 감색 신사복을 입고, 자주빛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나지막하나 부드럽고 무게있는 목소리로 영시를 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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