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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달러상 별명만 통하는 점조직|서울에 2백여명…「물주」는 따로|3명피살사건 계기로 알아본실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사실래요?』
『넓은거요, 좁은거요.』『좁은거요.』
『몇장입니까?』
『한 열장쯤 될걸요』
『오늘은 8만2천3백원 나가네요』
『합시다』
서울명동성당 여자암달러상 피살사건이 터지고 경찰의 현장조사가 한창이던 16일 하오3시. 서울명동입구 코스모스 백화점과 중국대사관 사이의 속칭 「명동달러골목」에 손바닥만한 크기의 앉은뱅이 나무의자를 깔고 앉은 60대 여자 암달러상과 40대의 한 「고객」사이에 흥정이 오간다.
보통사람들로서는 알아듣기 힘든 몇마디가 자연스럽게 오가더니 「좁은 것 10장」(미화1천달러) 을 내민 남자에게「달러 아줌마」는 82만3천원을 세어준다. 재빠른 홍정에 공공연한 모습이다.「넓은것」이나 「좁은것」은 각각 일본 엔화와 미 달러화를 지칭하는 암달러상들의 은어. 일본돈 1만엔짜리와 미화1백달러짜리 지폐의 크기를 두고 나온 말이다.
기본단위인 「1장」은 1백달러, 「10장」은 곧 1천달러를 뜻한다.
그러나 이같은 즉석거래는 대체로 「뜨내기」손님의 소액거래. 단골손님과는 전화로 거래가 이뤄지고 액수가 커질수록 보다 더 은밀하고 세밀하게 거래된다.
대부분 50∼60대 여자들로 구성된 암달러상들의 「개점시간」은 상오9시30분부터 10시사이. 일반회사의 업무가 한창 본궤도에 오를즈음에 명동과 남대문시장등지의 「암달러골목」에는 예의 두툼한 가방을 든 암달러상들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자신이 10∼20년을 두고 확보해놓은 목좋은 시장에서「영업」을 하되 남의 구역은 절대로 침범하지 않는것은 이들의 불문율.
퇴근은 해떨어지기전. 범죄꾼들이 노리기 쉬운 어둠이「암달러의 거리」에 깔리기전에 자리률 뜬다.
현재 서울에서 장사하고있는 암달러상은 2백여명.
남대문시장에 85명, 명동에37명, 동대문시장에 30명등으로 이 세곳이 서울 암달러시장의 본거지.
한남동·이태원일대 미군상대 암달러상이 30여명, 김포공항·영등포군복시장에 각각10여명, 종로3가 단성사극장 주변에 30여명이 영업하고있다.
이들은 대부분 5∼6명씩 한 조가 되어 공생하는 것이 특징이다.
달러를 사고파는것 자체가 불법일뿐더러 현금을 노린 범죄꾼들의 범행이 두렵기 때문이다.
합작해서 1∼3평의 사무실을 얻은뒤 전화를 놓고 한사람이 1시간씩 번갈아「전화당번」을하고 나머지는 길목에 나가 호객한다.
무역업자등 비즈니스맨과 해외이민및 유학생·해외여행자등이 이들의 주된 고객. 적게는 l백달러에서 많게는 수만달러에 이르기까지 거래액수와 방법은 천태만상이나 대부분 한건에 5백∼l천달러의 거래가 주종.
미화와 일본화의 거래 비용은 7대3.
『수입이 예전같지 않지요. 하루에 2만∼3만원 벌기가 정말 어려워요. 공치는 날도 많습니다. 70년대종반에는 1백달러만 바꿔도 1만원 가량을 벌었는데 지금은 2백원이상의 마진을 얻기가 힘들거든요』
암달러상들이 16일 일반인으로부터 사들인 달러시세는 1백달러당 8만2천3백원. 대부분 영세성을 면치못해 자기자본이 적은 암당러상들은 1백달러를 사들일 경우 대부분 「물주」로 불리는 중간상에게 연락, 내정된 시세로 달러를 사들이겠다는 확약을 받고 사들인다. 따라서 고객으로부터 사들인 값에 2백원의 마진을 붙인 8만2천5백원에 「물주」에게 넘겨준다.
달러를 급히 사려는 손님이 나타나면 방금 팔았던 「물주」에게 연락, 1백원을 얹은 8만2천6백원에 다시 사들여 여기에 4백원의 이윤을 붙여 8만3천원에 고객에게 되판다는것.
「나까마 데도리」라고 불리는 이 과정을 모두 거쳤을 경우 1백달러에 5백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암달러상들은 본명으로 통하는 법이 없다. 그 사람의 주거지나 용모등을 이용한 별명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들이 갖고있는 명함도 사무실 전화와 별명만 적혀있을 정도다. 이를테면 최모씨(66·여)는 말끝마다 「좌우지간」을 연발, 별명이 「좌우지간」이 됐고 전모씨 (57·여)는 그녀의 행동 때문에「덜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노랑오바」「안경」「뚝섬아줌마」「평양노인」「바둑」「곰털」「쑥조카」등 별명은 이들의 숫자만큼 제각각인 셈이다.
이와함께 서로 절대 비밀을 유지하고 남편이나 자녀들에게도 거래내용은 일체 이야기하지않는등 이들의 철저한 비밀유지는 자신의 단골고객을 놓치지 않으려는 방편이 되지만 이 때문에 큰 사건발생때 수사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암달러상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이들 스스로가 내리는 진단. 외환율의 정상시세와 암거래시세의 미미한 차이를 비롯, 최근 들어 각종 여행사와 호텔로비, 심지어는 고급미장원 등지에서조차 달러환전이 가능한 추세에 있으며 과거 암달러상의 주요고객이었던 무역업자들도 해외지사를 통해 현지조달추세이며 법죄꾼들은 「반수사관」으로 훈련(?)된 암달러상을 거래대상으로 삼으려 들지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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