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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여성들에게 "도와주겠다"며 접근한 뒤 납치해

중앙일보

입력

자연 재해보다 무서운 게 사람인가보다. 대지진이 휩쓴 ‘세계의 지붕’ 네팔의 땅에 인신매매 범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주로 시골마을에서 집과 가족을 잃고 절망에 빠진 여성들을 노리는 인신매매 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도 카트만두의 한 비정부기구(NGO)의 샤크티 사무하 이사는 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인신매매 브로커들이 ‘구조’라는 미명 아래 여성에게 접근해 이들을 유혹하거나 납치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인신매매범들이 구조를 돕는 척 하면서 대상자를 물색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NGO 활동가는 신문에 “이런 혼란을 기회로 보는 인신매매범들이 기승을 부린다면 이만한 비상사태가 없다”고 우려했다.

네팔에서 인신매매단이 기승을 부리는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네팔의 극도의 남아선호 사상으로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차별을 받고 집안의 재산처럼 취급 받는다. 부모의 학대에 못 이겨 인신매매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유엔과 현지 NGO에 따르면 네팔 인신매매 조직에 의해 희생당하는 인구는 매년 1만2000~1만5000명에 이른다. 희생자들은 주로 인도 사창가에 팔리거나 한국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로도 팔려나간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여성들은 대략 300만~350만원 정도에 해외로 팔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 영화배우 데미 무어는 “네팔의 아동 성노예와 인신매매 근절에 앞장서겠다”며 1만 여명의 여성과 어린이를 인신매매범으로부터 구해낸 네팔의 인권단체 ‘마이티네팔재단’을 방문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인신매매단 조직원들은 네팔 전역을 돌면서 사창가에 팔기 적당한 여성을 물색한다. “인도에 돈 많이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 부자 외국인과 결혼할 수 있다”는 등의 거짓 약속을 한 뒤 여성들을 데려간다. 대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진앙지 부근 산악마을의 생존 여성들이 이들의 타깃이 되기 십상이다.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지역 중 하나인 신두팔촉의 보건계 종사자인 라쉬미타 샤쉬트라는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서 어떤 기회라도 잡으려 들 것이다”며 “시골마을에선 가족에게 딸을 팔라고 설득하거나 협상하는 매매단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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