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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주는데 경상수지 흑자는 쌓이고…딜레마 커지는 한국 경제

중앙일보

입력

경상수지가 37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경상수지는 103억9000만 달러 흑자를 냈다. 지난해 같은달(73억2000만 달러)보다 42% 늘어난 규모이자 월간 기록으로 사상 3번째로 큰 규모다. 이로써 1분기 경상수지는 234억2000만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151억9000만 달러)보다 54% 급증한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는 2012년 3월 이후 3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 추세라면 역대 최장인 1986~1989년의‘38개월 연속’기록을 갈아치우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1980년대 중반의 저유가ㆍ저금리ㆍ엔화 대비 원화 약세라는 ‘3저(低) 호황’에 힘입은 기록을 최근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신(新) 3저’가 깨는 셈이다.

하지만 외양만 당시와 엇비슷할 뿐 속사정은 다르다. 최근의 흑자는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 생긴 전형적인‘불황형 흑자’다. 수출이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소비ㆍ투자 확대로 수입이 함께 늘어나는 호황형과는 거리가 멀다.

3월 수출은 495억7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8.4% 줄었다. 수입은 383억6000만달러로 16.8% 감소했다. 이에 따라 3월 상품수지 흑자 규모는 112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수입 급감을 이끈 건 저유가다. 1분기 원유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6.5%를 기록했다.

수출 감소 역시 저유가와 세계경제의 저성장에 영향을 받고 있다. 여기에 일본ㆍ유럽의 양적 완화 공세로 자국 화폐가치를 경쟁적으로 떨어뜨린 탓에 수출 경쟁력도 타격을 받고 있다. 1분기 수출은 지역별로는 일본(-22.0%), EU(-21.1%), 동남아(-13.2%)에서 급감했고, 품목별로는 석유제품(-38.7%), 가전(-19.1%), 승용차(-10.0%), 디스플레이(-5.6%)의 감소 폭이 컸다.

노충식 한은 경제통계국 국제수지팀 팀장은 “1분기 저유가 영향으로 상품수지에서 약 89억달러 흑자 요인이 발생했다”면서“수출이 둔화하고 있는 요인도 수입과 마찬가지로 국제 유가 하락에 따라 석유류 제품 가격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최근 자동차ㆍ가전ㆍ디스플레이 패널 등 주력품목이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엔저 공세에 수출기반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경상수지 흑자는 쌓이면서 외환당국의 딜레마는 커지고 있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9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892억 달러를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다. 미국 재무부는 최근 환율 보고서를 통해 원화가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에 비해 저평가됐다며 외환시장 개입 자제를 주문하기도 했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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