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도전<15>정구영비망록|〃각하, 정치자금엔 개입마십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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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군정주체 몇사람들만의 집권체제 편성-이것은 공화당 정부가 국정은 물론 당운영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하는 불행한 출발이 되었다고 정구영은 회고했다.
제3공화국 초대내각은 정구영의 건의와 상관없이 주체들이 짰다.
JP팀은 군민혼성·군주체중심·민간우위등 3개의 조각안을 올렸다.
이후락비서실장은 그협의에 참여하기서 희망했지만 JP팀에선 그 의견을 흘려버렸다.
청와대비서실구성에서도 JP팀은 주도적 역활을 하려했다.
그런데 인선결과는 청와대살림준비때문에 먼저 가있던 JP계열의 고재일총무비서관을 그대로 둔것 말고는 모두가 생소한 사람들이었다.
JP팀은 불만을 참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이후락을 조선호텔라일락실로 호출했다.
그때만 해도 실력자 HR는 아니었다.
고분고분 부름에 응했다.
성토가 시작됐다.
다혈질의 신윤창·오학진등이다.<당장 보따리싸서 대통령곁을 떠나라. 그러겠느냐 못하겠느냐>권총까지 빼든 다그침이었다고 한다.
그런 급보가 청와대에 전해져 박종규경호실장이 달려왔다.
대통령의말씀을 전하겠다고 해서야 간신히 문이 열렸다.
박실장이 JP팀과 얘기를 하고 그사이 이후락은빠져나가 도망쳤다.
김종필과 이후락의 불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JP팀의 엉성함은 원내요직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1차외유기간 공화당창당팀의 대부분이 섭섭한 행동을 했다고 했고 그것이 원내와 당개편에서 나타났다.
그의 반대세력의 보스가 되는 김성곤의 재경위원장 기용과정만 살펴보자.
공화당과 범탕 대결에서 공화당을 건져주고 원대복귀한 김희덕장군은 이재만을 재경위원장으로 추천했다.
그랬는데 재경위원장 발표직전 김종필은 이재만에게 말했다.<이번에 임명되는 위원장들은 희생타입니다. 이의원은 저와 정치를 하실분입니다.> 그러면서 김성곤파의 어떤거래를 이유로 재경위원장을 주어야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집권세력 포진에서 JP는 치밀하지 못했다.
꼭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때가 JP에겐 실권을 행사하는 마지막 기회가 되고말았다.
순서가 뒤바뀌지만 정구영이 겪는 두번째 국회의장선거파동을 살펴보자.
이 파동은 박대통령의 공화당운영과 제3공화국에서의 여·야관계의 한 단면-6·3사태를겪고 야당이 강·온파로 쪼개져사꾸라논쟁에 휘말리던 내면을 보여준다.
이에관한 정구영의 회고.
『6대국회 2년이 지난 65년11월하순 청와대의 연락이 있어서 들어갔지.
-국회의장을 다시 뽑아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잘 모르겠소만 그걸 왜 제게 묻습니까?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인선해야 하는가를 묻는것입니다.
-이효상씨를 재추전하는게 좋을 것입니다.
내가 그랬더니 박대통령이 이유를 물어. 그래 내가 좀 장황한 설명을 했어. 선진국예로 보면 의장은 국회임기기간 내내 재임하는데 일부에서 2년으로 한것은 의장이 당정책과 어긋난 행동을 하거나 정파연합으로 다수당을 이루었다가 정파연합이 변동되어 다수당이 달라졌을 때 의장을 불신임해서 바꾸게 되면 체통이 사나와져…. 그런 경우를 가상해서인데 원칙적으로 최초의의장선출 때와 사정이 달라진게없다면 유임이 원칙이다고 했어(이의장 재임기간의 두가지 실책얘기는 생략함).
이의장 재임기간 그런 일도있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그일이 정치적으로 공이 된다고도 할수있잖겠느냐<어쨌든 각하의 판단이다>라고했지. 박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면서 유머로 받아넘기더군. 초기에 대통령과 당의장이 나에게 의장지명을 통고했다가 변경한 일에 신경을 쓰는구나 했지. 약3주지나 의장선거를 하게되는데 박대통령이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을 지명해왔어. 첫번째는 의원총회 위임결의가 있었는데 이번엔 그런 절차없이 별안간 일방적으로 지명한거야』
파동에 대한 정구영의 녹음을 요약하자.
공화당의원들은 의장과 상임위원장 지명에 반발했다.
세칭 강경주류는 이효상의 경솔함과 실언등 사례를 들어 반대하고 정구영을 밀기로했다.
김용태·예춘호두의원이 김종필당의장을 찾아가 의논했다.
△JP=어느정도 자신있느냐.
△예=꼭 된다고는 못하지만 이효상보다는 표가 많다.
△JP=기회를 보아 예총장하고 청와대에 들어가 번복재가를 얻어봅시다.
그러면서 JP는 정구영선거자금을 내놓았다.
JP까지 양해했으니 사태는 심상찮게 들아갔다.


대통령의 비민주적 독단이 못마땅해 방관하던 정구영도 대통령뜻에 안맞는 국회의장이 되어서는 혼란만 온다고 판단해 김종필과 김동환총무를 불러 그런 취지를 설명하고<설혹 당선된다해도 수락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반란은 확고했다.
이윽고 의장선거-.
야당은 기권하고 정구영69, 이효상55로 모두과반수 88표에 미달했다.
정구영은 의원총회를 열라고 재촉했다.
JP는 좀 기다려 달라고 하곤 김동환총무, 장경순부의장을 데리고 청와대로 갔다.
번복지명을받기 위해서였다.
그랬지만 이후락실장은 대통령면담을 막았다.
헛걸음하고 돌아온 JP는 의원총회에서 총재 뜻을 따를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구영도 같은뜻의 얘기를 했다.
2차투표는 재석 1백64중 이효상88, 정구영60표였다.
공화당 60표는 굽힘이 없었고 야당 38표가 이효상의장을 편들어 과반수를 만들었다.
그때 박순천-유진산체제의 민중당은 당내 민주주의라는 그들의 기본지침을 어겼다.
그런 어긋남을<야당부의장 선거때의 공화당의 협조>때문이라는 논리로 커버하려했다.
그랬지만 야당부의장 선거는 공화당 다수파의 보복으로 3차투표까지 가는 수모를 자초했다.
그런 의장선거가 있은 직후 박대통령은 섬진강댐 준공식에 가면서 정구영을 초청, 특별열차에 동행케했다.
그날 가고 오는 7시간동안 내내 박대통령은 정구영과 단독대좌해 담론했다.
관계장관등 수행원은 멀리 떨어져있고 단둘만의 대화였다.
국정에 관한 것, 당운영에 관한 것, 아주 중요했던 많은 얘기들은 훗날로 미루고 의장선거와 관계된 대화의한부분만 옮겨보자.
대통령은 의장선거때의 반란은 엄한 징계로 다스리겠다고했다.
정구영은 대통령의 일방적 지명이 그런 사태를 가져왔다고 했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괘씸한 행동입니다. 용서못해요. 최소한 주동자 3, 4명은 제명하겠읍니다.
-당명에 복종하지 않은 행동은 징계사유가 될수있겠지요. 그럽지만 총재각하 개인의 의사를 받들지 아니했다는 것과 당명불복과는 다릅니다. 이번에는 이왕 지난일이니까 너무 깊이 생각마시고 앞으로는 의원총회를 존중하는…..
-좋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생각하면….
공화당내의 50표가 나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까짓 40표되는 야당의원 제편으로 끄는 방법이 있지요.
『나 대통령의 그말에 놀랐어요』.

<낮엔야당 밤엔 여당>

<그까짓것 야당 40표가량 얼마든지 내맘대로 내 정견에 따르도록할 자신이 있읍니다>이거 중대한 얘기야. 착잡한 생각이 떠올라. 야당이 야당노릇을 못한다는것, 야당표가 이효상으로 가던 이면의 부끄러운 얘기들…그 이전 6·3사태 해결때의 추잡한야합…이것이 소위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이라는 말이 생겨난 원인이 거기 있지 않을까생각이 들어. 그날같이 실망하고섭섭한 때가 없었어요.<그런 생각을 하는것은 대정당을 이끌어가시는 각하의 말씀이 아닙니다.> 나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어』
이부분 상보는 훗날로 미루고 정구영이 당의장을 수락하고 난뒤의 박대통령과의 대화만을 요약하자.
정구영은 김종필당의장이 두번째 외유라는 「위기탈출」 을 한 64년6월 대통령과 당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당의장 조건부 수락을 했다.
그런 2, 3일뒤 칭와대로 갔다. (전략)
-정치자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30여년을 법조생활을 해서 모든것을 법치면에서 내다보고 있습니다.
정치와 법은 거리가 있다고 하지만 표리일체라는 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국가는 법치주의가 절대요건이라고보는데 .우리 현실은 정치자금 염출이 어렵습니다.
여기에대해 내가 각하께 제일 먼저 진언하고 싶은것은 청와대에서 정치자금을 상관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뭐 그런것이 있나요?
-항간에서는 내각위에 청와대의 소내각이 있다고합니다.
모든 정치, 인사에 관한것 자금에 관한것 이두가지는 이후락비서실장을 통하지 않고는 안된다, 장관들은 로보트다. 이후락씨 쪽지한장이 들어가면 그것이 곧 지상명령으로 통한다, 이런말이 벌써부터 유포되고있습니다.
작년l2윌에 제3공화국이 출발해서 불과 몇 달안되어 이런 것이 공공연하게 시중에 유포가 되고 있으니 이것이 대단히 우려될 현실입니다.
청와대에서 정치자금을 만든다는것이 우리 후진국에서 정치자금을 조달하는데 정치권력이 개재한다는 것, 이것은 지극히 위험시되는 바입니다.
정치자금이 필요악이라고 이천한다 할지라도 최악의 경우 당에서는 당의외선, 정부에서는 국무총리선까지만 가야지 그것이 청와대에까지 파급이 된다면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문제요. (중략) 지금 비서실장이 제아무리 뭐라해도 각하의 몸대신입니다.
여기서 이후락군으로 하여금 그행동을 못하게하면 좋겠읍니다.
-생각 하겠습니다. 좋은 의견이신데 잘 생각해서 처리하겠읍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6·3계엄을 푸는 여·야협상이 있었다.
그과정에서 정구영은 이후락이 정치의 한복판에서 조타수 역할을 하는것을 보게된다.
그래서 정구영은 다시 청와대로 갔다.
-(전략)각하 아무리 각하께서 간여 안하신다해도 이후락군이 이면에서 하고 있으니 절대로 갈아야합니다.
-갈지요. 알겠읍니다.
그러고 다시 2∼3주 지나도소식이 없어 다시 가서 얘기했다.
박대통령은<조금만 참으십시오.곧 틀림없이 갈겠읍니다> 고했다.
그 바로후 이효상이 언론윤리위원회법안을 검토하기 위한 회의를 주선한다.
그때 정당의장과 정일권총리는 이후락도 참석한다는 말에<이후락이 온다면 못가겠다>고 했다.
그무렵 정총리도<아무 권한이 없으니 있어야 할지 나와야>라고 정구영에게 푸념하던 때다.
바로 그 다음날의 청와대회담.
정구영당의장, 정일권종리, 백남억정책위의장,이후락실장,김형욱정보부장이 모였다.
-이 규제법 하나 가지고서 당에서는 이랬다 저랬다 하시니 웬일입니까.
-이랬다 저랬다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거 하찮은 문제를.
-도저히 저로서는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어저께 국회의장한테 들으니까 정부와 여당 연석회의에서 결정한 이외의 사항을 가지고 각하께서 이의장하고 얘기를 하셔서 이후락실장이 간여해서 이러쿵 저러쿵 수정하는것이 나왔다던데 어저께 그걸 처음 들었습니다. 도리어 당에서는 이러쿵 저러쿵이 없읍니다.
-아 그게 아니고….
그러자 정일권총리가 나섰다.
-각하, 그것은 덜 생각하신것입니다.
그저께 연석회의에서 각하가 지시한 대방침을 그대로실천하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결정이 되었는데 어저께 국회의장이 이후락실장하고 같이 오라해서 갔더니 거기서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 그것은 정당의장님이 각하하고 말씀한 이외의 사항이고 나중에 각하하고 의논하고자 한것이지 당에서는이러쿵 저러쿵 한일 없습니다.
그날 그런 해명에도 대통령은 불쾌한 표정을 풀지않았고 결론없이 헤어진다.
정구영은 청와대를 나오면서 당의장 사임을 생각하고<아하 그전에 이후락은 꼭갈아야겠구나> 고 마음을 굳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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