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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국가지배구조 개편 이뤄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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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광복 70년-대한민국은 극적인 성공과 미래 실패를 가져올 독소를 함께 안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식민국가 중 한국만큼 성공의 역사를 써 온 나라는 없다. 전후 유일하게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됐으며,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압축적 근대화를 이뤄 냈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 초고속 산업화와 소득 증대, 국력 상승, 이어진 민주화와 한류의 폭발 - 지금의 그리고 후세의 한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 성공의 음지는 유난히 어둡고 길게 늘어져 있다. 아이 낳아 기르기가 주저되는 나라,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나라, 행복하지 않은 나라, 물질만능주의 나라…. 부인하고 싶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출산율, 사회적 신뢰, 정부와 정치에 대한 신뢰도는 우리가 비교할 수 있는 나라들 중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고 자살률·낙태율·위증죄·무고죄·사기범죄율에서는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소득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세계 13위 경제력 을 자랑하면서도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 -그것이 오늘날 한국의 자화상이다. 이제 국민은 묻기 시작한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성공이었는가?

 한국은 근대화 혁명에 성공했지만 지금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품격, 갈등, 제도와 제도의 운용방식으로는 선진 국가를 이뤄 내기 어렵다. 지금 한국에서는 눈앞의 선거만 있고 미래 국가 전략은 없으며 국정 운영의 장기적 비전과 일관된 행정이 결여돼 있다. 교육열은 있으되 공동체에서의 책임의식·봉사정신·창의성을 갖춘 인재들을 길러 내지 못하는 교육현장이 있을 뿐이다. 정당정치는 있으나 책임은 지지 않으며, 기득권을 보호하고 이권 추구에 몰두하는 정치가 있다.

 세월호·성완종 사건은 우리 사회의 몇몇 사람 때문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토양이 만들어 낸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 깊이 내재돼 있는 유인·보상·징벌체계가 만들어 낸 결과다. 이 구조적인 유인·보상·징벌체계를 바꿔 주지 않고서는 지금과 같은 사회구성원들의 왜곡된 행동패턴을 바꾸고 한국 사회가 분열·해체돼 가는 것을 막기 어렵다.

  성균관대 이동원 교수는 ‘사회신뢰의 결과와 원인’(2013)이란 논문에서 사회신뢰도는 소득격차와 역의 관계에 있음을 계량분석으로 보여 주고 있다. 소득격차 해소, 고령화에 따른 정년제도, 임금체계 개편, 노동 부문 이중구조 및 기업지배구조 개선, 교육, 관료제도 개혁 등 지금 한국 사회에 요구되는 과제는 한결같이 국가의 장기적 전략과 일관되고 강력한 추진을 요하는 구조적 난제들이다. 반면 5년 단임 정부에서 거의 매년 치러지는 선거, 국회와 행정부의 취약한 협력고리는 국정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사회 전반에 단편적·대증적·문제 이연식 접근을 만연케 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서도 놓치는 눈뜬 봉사 같은 나라가 돼 가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해 우려하고 미래 개혁을 위해 뜻을 가진 사람은 많으나 그것이 조직적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 계층의 방어막, 국가 권력의 위약, 불신과 격차의 증대, 가치의 혼돈, 계층의 고착화, 이런 것들이 혼합되면서 한국 사회는 점점 분열과 정체의 길을 가고 있다. 세월호 사건 당시 국민과 언론은 ‘이것이 과연 나라인가’라고 절규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게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성찰과 개혁의 추진은 무엇보다 국가지배구조의 개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개편 논의는 국회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국회도 국가지배구조 개편의 대상이다.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국회에만 맡기면 국회 권한을 강화시키는 개헌안밖에 기대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회는 지금도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개개인으로서의 국회의원은 국정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국회 권한 강화는 무책임한 정치를 더 강화할 수 있다. 오히려 대통령과 집행부의 권한과 임기를 강화시키는 개헌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래야 더욱 공고화되고 집중된 시장 권력을 국가 권력이 감당·개혁해 나갈 수 있다.

  국회에 양원을 두어 상원은 당리당략보다 국가 미래, 장기 발전에 집중토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영국의 상원은 종신직으로 각 분야에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으며 미국 상원의 이름은 원로원(Senate)이다. 하원의 임기가 2년인 데 비해 6년의 임기를 주고 인구비례가 아닌 각 주에서 경륜을 지닌 원로 2명을 뽑아 장기적 관점에서 국정을 논하라는 취지다.

 개헌은 경제 살리기를 위해 미뤄 둬야 할 일이 아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이뤄 내야 할 일이다. 헌법과 국가지배구조는 국가의 근간이다. 국민이 충분한 토의와 검증을 거쳐 꼭 이뤄 내야 부끄러운 나라를 차세대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