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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in&Out레저] 하얀 물결 일렁이는 초록의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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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제2다원.

다원 옆 개울의 가재.

전남 보성군에 가는 길. 서해안과 호남 땅을 뒤덮은 하늘은 끊임없이 눈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이 앞섰다. 폭설이 차밭을 뒤덮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 아닐까. 하지만 보성행 길을 잡은 것은 사실 눈 때문이었다. 눈 내리는, 눈 쌓인 차밭이 궁금했던 게다. 국내 여행지 중 보성 차밭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광경이 있을까. TV 광고나 드라마에 수도 없이 등장했던 모습이다. 영상이나 사진에서 보는 차밭은 늘 푸르다. 차나무는 동백나무처럼 사철 푸르니까. 겨울의 차밭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하지만 차밭이 눈을 만난다면 어떨까.

<보성> 글·사진=성시윤 기자

눈발을 헤쳐 먼저 찾아간 곳은 '보성다원 제2다원'(보성군 회천면 회령리). 보성읍 쪽에서 출발, 회천 방향 18번 국도를 따라 '보성다원 제1다원'(보성읍 봉산리) 앞을 스쳐 지난다.

TV에 곧잘 등장하는 차밭, 그러니까 흔히 '보성다원'으로 알려진 곳은 제1다원이다. 1다원은 활성산(470m)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계단식 차밭은 활성산 비탈에 부드러운 곡선을 반복해 그린다. 이 곡선미가 차밭의 매력이다. 반면 2다원은 회천면의 평지 위에 펼쳐져 있다. 그래서 2다원은 '밋밋하다'.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고, 식당 같은 편의 시설도 없다.

18번 국도에서 웅치면 방향으로 길을 틀어 지방도로를 조금 달리니 왼편으로 2다원이 나타났다. 다원에 도착했을 때쯤 눈발이 잦아들더니 눈이 그쳤다. 눈 덮인 차밭은 황홀했다. 하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떠오는 것은 왜일까.

'밤중 고요한 속에서 달의 숨소리가 들리며 콩과 옥수수 잎새가 달에 푸르게 젖어 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소금을 뿌린 듯이 숨이 막힐 지경이다'.

푸르게 젖은 이곳 차밭에는 메밀꽃보다도 더 하얗고 굵은 소금이 뿌려져 있었다. 차밭의 고랑을 타고 넘은 시선은 저 너머 득량만 바다로 이어진다. 무한한 여유 속에 묘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차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길을 되돌려 제1다원을 찾아갔다. 차밭을 운영하는 대한다업 직원이며, 이곳에서 차를 파는 홍경희(39)씨를 억지로 앞세웠다. "별로 아는 게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경희씨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차밭의 사계를 들려준다. 싱그러운 봄, 여름의 울창함, 하얀 차 꽃 피는 가을을 지나 차밭은 지금의 눈 속에 쌓여 있다.

10월을 즈음해 한 해의 농사가 끝나면 차밭은 다시 곡우(4월 20일)를 전후한 시기까지 눈 속에서, 바람 속에서 세월을 난다. 봄을 맞아 아기 손톱 만한 새싹이 돋기 시작할 때까지다. 그러면 적게는 60부터 많게는 80 먹은 이 일대의 할머니들이 허리를 굽혀 손으로 찻잎을 딴다. 젊은 사람이라면 하지 못할 일 아닌가.

활성산에서 시작된 개울이 차밭 옆을 스치며 흐른다. 꼭 한번 묻고 싶은 얘기를, 개울 옆을 지나면서 꺼냈다. 일부 사람이 말하는 보성 녹차의 '안전성' 문제였다.

경희씨는 "설마요? 이곳 개울에 가재가 얼마나 많은데요?"라고 반문했다. 그러더니 개울 속의 바위를 뒤져 가재 한 마리를 꺼내 보였다. 대한다업은 19일 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유기농 인증'도 받았다 한다.

졸지에 눈밭으로 퉁겨져 나온 가재는 개울을 향해 기기 시작했다. 하늘은 다시금 흰 눈을 쏟아 부을 듯 부옇게 흐려져 갔다.

*** 여행정보

꼬막 먹고 '빛 축제' 보고

다향(茶鄕) 보성에 겨울철 볼거리가 생겼다. 15일 시작해 봇재 일원의 차밭(회천면 영천리)에서 내년 3월 말까지 이어지는 '보성 차밭 빛의 축제'다. 실전구와 LED 전구를 이용해 차밭에 대형 트리와 아치형 조형물 등을 설치했다. 매일 오후 5시30분부터 자정까지 전구를 밝힌다.

보성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게 율포 해변의 해수녹차탕(061-853-4566). 바닷속 지하 120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를 데우고 찻잎을 우려낸 물로 목욕을 하는 곳이다. 입장료 5000원. 운영 시간은 오전 6시~오후 8시.

▶추천 숙소: 보성읍내 보성 터미널 옆의 보성관광모텔(061-853-7474). 지난해 문을 열어 시설이 깔끔하다. 숙박료는 주말 기준으로 일반실 3만5000원, 특실 4만5000원. 침대방은 물론 온돌방도 갖추고 있다.

▶추천 맛집: 보성 벌교에서 참꼬막이 제철을 맞고 있다. 가을부터 봄까지 캐는데, 지금부터 2월까지가 가장 맛 있다. 벌교읍의 '홍도횟집'(061-857-6259)의 꼬막 정식이 유명하다. 무침.전.탕 등 꼬막을 재료로 쓴 반찬이 다양하게 나온다. 1인분에 1만2000원.

▶기타 여행 정보: 보성군청 문화관광과 061-850-5223,4. 보성군청 관광안내소 061-852-1923. 보성버스터미널 061-852-2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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