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모든 광장에서 집회할 수 있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광장은 민주주의의 산실이다. 1986년의 서울 광장, 2002년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문 광장, 2013년 터키의 탁심 광장 등 국민이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서로에게 직접 표현하기 위한 장소가 바로 광장이었고 바로 이 광장을 통해 민주주의가 요구되고 관철돼 왔다. 그리고 집회는 1차적으론 다수인이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말하지만 불특정 다수인이 청중으로서 집회를 보고 들을 수 있고 언제라도 원할 때는 스스로 참가할 수 있는 공간적 상황을 필요로 한다. 헌법이 제20조 언론출판의 자유와 달리 제21조로 집회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것은 바로 이 공간적 상황도 보장해 준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 참가자를 압도하는 숫자나 규모의 인벽이나 차벽으로 집회 참가자를 둘러싸서 일반 행인들의 시선이나 참여로부터 격리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불법적인 행위다. 물론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그런 벽을 쌓을 수는 있겠지만 지난번 세월호 집회에서 보듯이 버스 등의 파손은 경찰이 불법적인 차벽을 선제적으로 쌓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서울 광장과 광화문 광장을 허가제로 운영하면서 집회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아마도 서울시는 이들 광장을 경기장·극장·주차장 등의 시설로 보아 관리자로서 당연히 허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논리인 것 같다. 하지만 헌법 제21조는 허가제가 국민의 의사 표현을 원천적으로 통제하기 때문에 금지하고 있는데, 광장을 허가제로 운영한다는 것은 바로 대부분의 집회를 허가제로 규율한다는 것이 돼 위헌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의 모든 땅은 국유지·공유지·사유지 셋 중 하나인데 각각 국가·지자체·개인 등의 소유자가 모두 배타적 통제권을 가지고 있어 어차피 이들의 허가 없이는 집회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도대체 헌법 창시자들은 어디에서 집회가 가능하다고 보고 집회 허가제가 금지된다고 한 것일까. 바로 광장과 도로다. 실제로 1939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시내의 길거리, 공원(광장) 및 공공건물 내에서의 집회에 대해 허가를 받도록 한 조례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길거리와 공원은 소유자가 누구이든 역사 이전의 시간부터 대중의 사용에 신탁돼 왔고 기억이 아득할 정도로 오랫동안 시민들 간의 집회와 사상의 교환, 그리고 공적 사안에 대한 토론을 목적으로 이용돼 왔다’며 법적으로는 시가 소유하거나 통제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경기장이나 극장처럼 시의 허가에 의해 운영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게다가 현재 허가제를 규정하고 있는 광화문 광장 조례와 서울 광장 조례는 상위법인 도로법과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 광화문 광장은 세종로에서 차도를 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부분은 모두 보도로서 도로다. 서울시가 도시계획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전용시설 등으로 지정했을 수 있지만 상위법인 도로법상으로는 도로이고, 그래서 서울시도 광장에서 행사를 할 때는 경찰의 허가를 얻어서 한다. 서울 광장 역시 원래 로터리였고 현재도 도로로 이루어져 있다.

 도로는 해당 지자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도로를 지날 수 있는 모든 국민의 것이다. 도로 한 곳만 막아도 도로 양쪽의 모든 국민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법상 지자체는 도로 관리를 하는 데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지 경기장이나 극장처럼 출입을 통제할 수는 없다.

 일단 광장이 보도로 이루어진 이상 누구든지 집시법상의 절차에 따라 경찰에 신고만 하면 여기서 집회를 주최할 수 있고, 심지어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신고를 하지 않아도 해산당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그런데 경찰에 하는 신고와는 별도로 서울시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은 집시법에 반한다. 민주주의의 산실, 광장과 도로를 실질적인 집회 허가제의 질곡에서 구해내야 한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