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극수준향상〃기대 못미친 범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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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연극 중흥뿐만 아니라 더나아가 민족예술의 찬란한 개화를 목표로 올 9월에 문을 열게될「중앙아트홀」개관 공연작품응모(고료 1천만원)에는 기성, 신인을 막론하고 전국적으로 수심명의 극작가들이 참가했다.
그리하여 엄정한 예심을 거쳐 『나무십자가』『불가불가』『검은새』『땅끝에 내가서며』『돼지와 목련』『주걸, 춘풍전』『고리』『잃어버린 계절』등 9편이 본심에 올랐다.
이들중『고리』『잃어버린…』『땅끝에…』등은 진부한 감각과 함께 희곡의 기초가 탄탄치 못해서 곧바로 탈락되었고 나머지 5편이 저상에 올라 다각적으로 분기되었다.
그런데 조선조 후기의 해학소설 『이춘풍전』을 소극스타일로 재구성한『주걸, 춘풍전』은 운문체대사와 개과천선형의 고전적 틀을 깨뜨린 점이 평가되었으나 예술의 절제원칙에 어긋나 제외되었고, 득도과정을 괴기극적으로 끌고간『돼지와 목련』은 통속성때문에 제쳐졌다.
결국 3편이 최종적으로 남게되었는데 이들중『불가불가』는 그뛰어난 감각과 무대적 기교에도 불구하고 선에 오르지 못한 것은 두가지 이유때문이다.
첫째 작자가 연극의 일류전(또는 역사)과 현실을 연결시켜서 선념없는 오늘의 인간군상을 각성시키려한 의도는 이해할수 있으나 그 강렬한 메시지를 담을만한 예술성이 부촉했고 둘째는 여과되지않은 비속한 언어가 작품의 격을 떨어뜨린 점이었다.
이와 유사한 결함은 나머지 두작품들에도 있었다.
가령 조선초기 이징옥의 난을 통해 모반과 모반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폭력성을 비판한『검은새』의 경우 역사적 사실에서 못 벗어나 잡다한것이 흠으로지적되었다.
잡다하다는것은 정리가 덜 되었다는 것이고 정리가 덜 되었다는 것은 사보의 이면에 굽이치는 역사의 물줄기를 끌어내서 재구성하는 힘이 약했다는 의미도 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중요한 장면을「소리」로처리한 것이라든가 시끄러운놀이로 가져간 것도 작품을 더욱 혼미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한 귀퉁이에 숨겨져 있는 장군의 모반사건을 통하여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던져주는 암시는 큰 것이었다.
이작품이 성공적으로 형상화되려면 외세등 많은 욕심을 압축해서 이징옥의 모반과 몰락에 집중시켜야 하리라 본다.
범용한 역사의 재현인 점에서는 대원군의 천주교박해를 묘사한『나무십자가』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체적인 구성이라든가 적절한 인물배치, 사건의 전개등에 무난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감동을 눌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작자가 천주교의 위대성에 너무치우친 나머지 주인공 안기선의성격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한때문이다.
그러니까 안기산의 배교파 순교라는 복잡한 심리변화의 극적 동기가 제대로 그려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경우는 안기선의 아버지와 스승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바로 그점 때문으로해서 종교(이상)와 세속(현실)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상이 그려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큰 결함은 작자나름의 종교관과 역사관이 나타나지않은 점이었다.
이는 작품의 언어속에 작자자신의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없었던 점에서도 잘 확인된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던 두, 세작품은 오늘의 세곡수준만은 충분히 유지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선작을 내지 않은 것은 이번기회에 한국연극의 수준을 일거에 끌어올려보자는 야심때문이었다.
기왕에 한국연극의 중흥을 내걸고 「중앙아트홀」이 역사적인 개관을 하는 마당에 한국희곡사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만한 수작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어 아니겠는가.
강호재현의 야심적인 도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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