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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뭉치면 만만찮은 정치세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로스앤젤레스 근교에서 사업을 하는 「하버드·지」씨는 지난겨울 자신이 7월1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민주당대통령지명대회 공동의장(Cochair)으로 선임되었다는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발표문을 갖고 워싱턴에 나타났었다.
그는 자기가 특히 「오닐」하원의장과 가깝다고 말하고 「먼데일」대통령후보와도 친근한 사이라고 주장했다. 한 교포신문은 「오닐」의장이 만찬석상에서 그를 『내 아들』이라고 지칭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1월28일 로스앤젤레스의 빌트모호델에서 열린 「먼데일」후보를 의한 모금 파티에서 그는 자기가 말로만 과시해온 민주당 중진들과의 친분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 주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오닐」의장과 「먼데일」옆을 오락가락하면서 귀엣말을 나누기도 하고 자기가 그 자리에 갖고 나온 카메라에 그런 모습을 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금융부정사건으로 연방대배심의 조사를 받게되었고 이 사실이 보도되자 민주당 전국위원회대변인은 그를 공동의장으로 임명한 것이 『잘못된 것이며 시기가 빨랐다』고 변명했다.
그가 외환은행과 한일은행에 각각 1천5백만달러의 빚을 짊어진 채 스스로 파산을 선언한 행동과 민주당 중진들과의 교분을 가능케 해준 정치헌금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앞으로 조사결과가 밝혀주겠지만 이 일화는 교포사업가가 정치헌금만을 가지고 미국정계에 입문하려는 무모한 예로 지적될 수 있을 듯하다.
지금도 이런 식으로 정치헌금을 주고 미국정계 거물들에 접근한 후 같이 담소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본국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본국에서 그런 사진에 속는 사람이 남아있는 한 그런 악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 교포언론인이 걱정했다.
그러나 그런 센세이셔널한 사건들 뒤에는 미국정치의 저변으로부터 착실한 노력으로 한국교민들의 정치바탕을 쌓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노력은 교포들의 정치적 힘이 표의 뭉침에서 온다는 인식에서 교포들의 유권자등록을 권유하는 운동으로 전개되고있다.
한국인시민권협회, 한국인정치활동위원회, 코리언-아메리컨연맹 등의 이름으로 한국교민들이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뉴욕·시카고·워싱턴 등지에서 전개되고있는 이 운동은 어느 정당에도 가담하지 않고 한국교민들의 투표등록자수를 늘리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은 개인단위로 미국정치인에게 거금을 주고 정명들과 개인친분을 갖는 것이 전체 교민들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교포지도자는 미국 국회의원을 자기집에 초청해 저녁식사를 나누려면 1만달러 정도의 헌금만 내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에서 정치활동을 한 교포는 『3만달러만 내면 대통령이든 누구든 불러줄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한 교포사업가는 「먼데일」선거운동원으로부터 3만달러를 주면 모임에 「먼데일」을 동원하겠다는 제의를 받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유권자 등록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은 한사람이 1만달러를 내는 것보다는 1만명이 1달러씩 내서 1만달러를 거둬주면 받는 정객이 표와 현금을 같이 받는 걸로 간주하고 당선 후에도 계속 그 집단에 충실한 대변자역할을 할게 아니냐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현재로 봐서 그건 바람직하기는 해도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참여도의 관점에서 볼 때 교포사회는 아직 뿌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공화당·민주당등 정당 단체도 구성해 놓았고 앞서 지적한 유권자 등록단체도 여럿 있지만 아직 일반교포들의 폭넓은 호응을 얻지 못하고있다.
예컨대 유권자 등록운동단체인 한인정치활동위원회는 8개주에 조직을 갖고 있으면서 회원수는 75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교포들이 아직 미국정치에 관심을 가질만한 재정 및 심리적 여유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교포사회의 자원을 어디에 써야할 지에 대한 우선 순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하나의 원인이다.
교포 정치활동가들은 특정후보를 위한 모금운동을 할 때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노인복지문제, 청소년문제, 미국사회 적응문제등 교포사회 내부의 문제가 시급한데 당장 큰 효과도 없는 미국정치기금에 교포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교포단위의 정치활동과는 별도로 아예 미국정당의 하부조직을 통해 정치적 위치를 키우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금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 「레이건=부시」 재선본부의 아시아계 유권자대책위원회위원장은 10여년간 공화당의 열성당원으로 활약해왔다는 한국계 「울릭·숙희」여사가 맡고있다.
「울릭」여사는 동시에 오는 8월20일 댈라스에서 개최되는 공화당 대통령지명대회에 대의원으로 선임되었다고 말했다. 「레이건」재선본부와는 별도로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소수민족위원회 산하에 금년 처음으로 코리언-아메리컨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 위원회의 공동의장에 변창환씨와 「신디·신자·도브」(「도브」하원의원 부인)등 두 한국계 인사들을 선임했다.
이들은 미국 공화당조직 안에서 한인교포사회의 정치활동에 하나의 연결점올 제공하게 될 지 모른다. 【워싱턴=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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